백색공산주의「화이트코뮤니즘」의 대두|서방진영 내의 공산당 노선|신상초(유정회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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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이탈리아」총선에서 기민당은 공산당에 신승했다. 이로써 공산당을 주축으로 하는 연정출현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러나 기민당이 중심이 되어 연정을 구성하는데 제3당인 사회당이 공산당의 참여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기민당은 연정을 구성하는데 큰 진동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기민당은 공산당의 참여를 배제하고 사회당 이하 군소 정당과 연정을 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연정은 약체하여 정국의 불안·동요를 피치 못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공산당의 약진이다. 공산당은 비록, 제1당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상원에서 25석을, 하원에서 49석을 더 얻어 분명히 정권을 사정거리 안에 두게되었다. 기민당 세력이 대체로 현상 유지한 것이고 보면 공산당의 의석증가는 주로 군소 정당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선거민의 투표가 기민당이냐 공산당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경향을 보였다는데「이탈리아」국내정치 양극화의 현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요. 그만큼 오늘의「이탈리아」는 정치적인 갈림길에 서있다 아니할 수 없다.

<의회정치 표방, 이미지 위장>
금년 들어「이탈리아」공산당은 소련혁명노선(폭력혁명과「프롤레타리아」독재)에의 추종을 거부했다. 「이탈리아」공산당은 의회민주정치를 통해서 정권을 잡을 것이며, 또 정권을 잡고 나서도 복수정당제에 기초를 둔 의회민주정치를 계속 옹호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뿐더러「이탈리아」공산당은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고「카톨릭」교회의 기반을 잠식치 않을 것이며 정권을 잡더라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는 계속 잔류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노선과 정책제시는 비록 그 동기나 목적인 표밭을 가꾸고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공산당의「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므로 족히「화이트·코뮤니즘」(백색공산주의)이라고 불릴만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전 정권인「파리·코뮌」이 적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공산주의는 적색으로 상징되어 왔다. 폭력혁명이건 공산당의 일당전제이건 막대한 피를 제물로 바치지 아니하고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므로 공산주의가 적색과 밀착한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소치가 아닌 것이요. 우리가 공산당원을 가리켜「빨갱이」로 부르는 것도 이러한 연관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공산당「혁명」원치 안 해>
정치적으로 적색이「피와 혁명」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백색은「평화와 질서」를 상징하는 것이다. 몇 해 전 선거구호로「법과질서」를 내세웠던「이탈리아」공산당이 이번 총선에서는「화이트·코뮤니즘」의 기치를 더 한층 선명히 하고 어느 정도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는데 오늘의 서구 공산주의운동의 변모를 엿볼 수 있다.

<상황변화로 강요된 변색>
비단「이탈리아」공산당 뿐 아니라「프랑스」나 일본의 공산당도「화이트·코뮤니즘」을 표방하고 있다. 이들 3개국에서 공산당이 그러한 노선을 걸어가게 된 객관적 배경은 무엇일까? 공통된 것을 추려보면 복지사회의 구현으로 공산당의 소위「기본계급」이 피 뿌리는 혁명은 원치 않게 되었다는 것, 교통과 기동력의 발달로 폭력 혁명의 구현이 불가능해졌다는 것, 고전적인「마르크스-레닌」주의의 단순·소박한 이론을 가지고서는 지식층을 유인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공산당이 의회정치를 통해서도 집권을 바라볼 수 있을 이 만큼 선거기반을 넓게 닦아 놓았다는 것 등이다.
「화이트·코뮤니즘」의 태두는「레드·코뮤니즘」이 지난날의「러시아」나 중국처럼 반봉건적인 사회에 있어서 민중이 절망적인 빈곤과 무권리 상태에 방임되었을 적에만 주효할 수 있다는 반증이 된다.
「화이트·코뮤니즘」을 표방하는 공산당이 집권 후에 과연 국민과의 공약을 지킬 것이냐에 관해서는 논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화이트·코뮤니즘」은 공산당이 정권을 잡기 위한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하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 운동의 질적인 대전환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실험이 진행 중에 있는 오늘 현재로서는 누구도 단을 못 내릴 것이다.

<국제공산주의 3극화 현상>
한가지 분명한 것은 거짓말 잘하기는 공산당의 제2생리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공산당의 주장이건 경각심을 높이면서 관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화이트·코뮤니즘」의 태두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삼 극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탈리아」공산당이 승리하고 집권하게 되지 않을까에 대해서 미국 못지 않게 소련이나 중공이 겁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은 각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각도에서 본다면「화이트·코뮤니즘」의 태두는 반드시 서구진영에 대해서만「마이너스」를 주는 것은 아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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