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아라비아 상공에서 생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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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란」여행을 끝마치고 시인의 도시「시라즈」에서「사우디아라비아」의 종교도시「제다」로 가기 위해 여객기에 올랐다. 우선「페르샤」만의「다란」에 멎었다. 국제선이건만 자기 나라에서는 국내선으로 취급하여 모두 내리게 했는데 입국절차를 밟느라고 시간이 걸린 데다가 새치기를 하는 승객들마저 없지 않아 이미 정원이라고 한다.
이 나라는 어떤「이슬람」교의 나라보다도 엄격한「와하비」파를 믿고 있으므로 사회질서가 잡혀 있는 듯하지만 새치기를 잘하는 것을 보니 교통도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대뜸 느낄 수 있었다. 공항에서 싸우다시피 하여 간신히 내가 타고 온 그 여객기의 마지막 승객으로 오르게 되었다.
이「다란」이란 곳은 특히「오일·쇼크」이후 많은 항공기가 틀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세계에서 휘발유 값이 가장 싼 곳이기 때문이다. 석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이같이 세계의 항공로까지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10여년 전에「쿠웨이트」에서 이 나라에 들어왔을 대에는 이 나라의 독자적인 표준시를 써서 이웃나라보다 6시간이나 빨랐는데 언제부터인지 지금은 국제표준시를 쓰는 것이 달랐다. 저녁이라 마침「아라비아」사막의 하늘에는 온통 붉은 놀빛이 지며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는데 그 위를 여객기가 날고 있으니「아라비안·나이트」속에서『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타고 가는 몽환다운 느낌이었다.
나는 4대의「카메라」를 총동원하여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스튜어드」가 느닷없이 앞에 나타나며 촬영금지라고 하면서「필름」을 내놓으라고 한다. 촬영금지라는 것을 몰랐다고 사과하면서 군사시설을 찍은 것도 아니며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한 자료로서 아름다운 당신의 나라의 모습을 찍는 것뿐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는 양보하지 않았으며 어딘가 잠시 갔다 오더니 찍은「필름」을 빼 달라고 한다.
나도 언성을 높이며『「이란」에서 왔을 때 애초에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면 모르거니와 줄곧 사진을 찍을 때는 보고도 가만히 있다가 다 찍은 뒤에 압수하겠다고 하니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소! 더구나 국제선으로서 외국손님이 많이 탔으며 다른 사람들도 많이 찍었을 텐데 왜 나한테는 이렇게 까다롭게 그러는거요!』라고 대들었더니 저쪽에서는 약간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버리기에 행여 무사한가보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일을 생각하여 재빨리 새「필름」으로 갈아넣었다. 도중에 머문 서울「리야드」에서는 아까「스튜어드」가 연락을 했던지 경찰 같은 사람이 나의 곁에 앉아서 나를 감시하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적지인「제다」에 내리기 얼마 전에 그「스튜어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오더니『기장께서 압수하라는 엄명입니다. 만일 항거하면 경찰에 넘기겠읍니다』라고 얼러 대었다. 대항할 수 없어 흥분한 듯이 새로 바꾸어 끼웠던「필름」을 빼서『자 보시오. 어디 많이 찍었나!』하며「필름」을 뽑아 보였다.
이것은 물론 광선에 비치면 나중에 현상했을 때 찍은 것이나 안 찍은 것이나 다같이 검게 나타나서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스튜어드」와 딴 사람도 모두 흥분하여 미처 나의 계략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광선에 비추었으니까 다 못쓰게 되었다고 안도감을 느꼈는지「필름」을 받더니만 불빛에 비추어 보고는 아무 것도 없는지 그만 가버리고 말았다.
내가「사우디아라비아」의 상공에서 사진을 많이 찍은 것은 물론 이 나라의 지리를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리기 위한 교육적인 목적 때문이니 죄의식이 있을리 없었다.
밤하늘 아래 넓디넓은「아라비아」사막 한 복판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비치는 서울「리야드」의 야경은 장관이었다. 10여년 전보다 훨씬 커진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여기서 우리나라 건축진이 크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서운했다.
여객기는 피서지의 왕궁이 있는 고원의「타이프」에 들렀다가 밤에 목적지인 서쪽의 현관인「제다」항구도시의 공항에 내렸다. 이「제다」시도 번영하여 주택가가 얼마나 늘었는지 교외 있던 공항이 주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도시는「메카」를 찾아오는 외국의 순교자들이 많이 둘러서 돈을 뿌리고 가는 곳으로서 외화획득을 하는 만큼「종교상업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도시도 물론 가장 엄격한「와하비」파를 믿는「이슬람」교외 도시인만큼 관능적이라야 할 밤도 어딘가 엄숙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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