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랏빚 1117조, 주범은 공무원·군인·사학 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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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랏빚이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2013 회계연도 국가 결산’에 따르면 미래에 갚아야 할 빚까지 포함한 나랏빚은 지난해 말 현재 1117조원으로 전년보다 215조원이 늘었다. 이 중 중앙·지방정부가 꼭 갚아야 할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는 482조6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3.8%로 전년보다 1.6%포인트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7.4%에 비하면 아직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데다 공기업 부채나 연금충당부채를 합할 경우 OECD 평균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언제 그리스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게 하려면 당장 손봐야 할 것이 연금충당부채다. 지난해 늘어난 나랏빚 215조원 중 대부분은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연금충당부채가 차지했다. 연금충당부채는 국가의 연금 지급 의무에 따라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채다. 물가상승률·퇴직률·사망률 등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우리나라처럼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면 연금충당부채도 급격히 늘어나기 쉽다. 지난해 연금충당부채는 596조3000억원으로 1년 새 159조원이 늘었다. 산정기준을 2012년과 다르게 했기 때문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의 부채 규모도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연금충당부채는 이미 국가재정에 직접 부담을 주고 있다. 공무원·군인연금은 진작 기금이 고갈돼 국고로 막고 있다. 사학연금도 20년 뒤면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는 데만 나랏돈 2조원이 들어갔다.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를 보전해주는 데 이 정부에서만 22조원이 필요하다. 이들 연금을 그대로 두고선 나라에 미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3대 공적 연금에 대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도 개정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새누리당도 개혁기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그러려면 2009년처럼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셀프 개혁’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당시 공무원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에 비해 절반 정도만 수령액을 깎은 데다 미래의 공무원에게만 희생을 떠넘긴 ‘꼼수 개혁’이었다. 이번엔 공무원들의 입김을 최대한 배제해야 진정한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정치권의 선심성 법안도 근절해야 한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각종 무상 공약이 판을 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재정 지출이 필요한 법안은 재원 조달 방안을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미국처럼 국가부채 상한제를 도입하거나 독일처럼 헌법에 재정 준칙을 반영, 재정 적자가 생기면 어떻게 줄일 것인지까지를 명시하도록 하는 등의 강력한 조치를 강구할 필요도 있다. 물려줄 게 없어 후대에 빚을 물려준 부끄러운 선배가 돼서야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