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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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백화점들의 상혼은 실로 놀랍다. 가령 옷 한벌을 샀다가 며칠 뒤 다른 것으로 바꾸려 해도 군소리가 없다. 때로는 장소까지도 곁들이며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되 물릴 때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게 손상된 부분이 없는 한 현금으로 되바꿀 수도 있다. 물건이 시원치 않으면 덤까지도 받을 수 있다. 고발까지는 아니지만 좋지 않은 상품에 대해 호소를 하면 새것·좋은 것으로 얼른 바꾸어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사과 조로 덤까지 주는 곳도 있다.
소비자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물론 상인과 소비자 사이의 시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럴 때면『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겠다』고 나서면 저쪽은 대개의 경우 슬쩍 후퇴한다.
이런 상도의랄까, 소비자 보호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은 아니다. 미국에 소비자연맹이 생긴 것은 1930년대로 벌써 반세기 가까운 전통을 쌓고 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는 기구는 어느 사회에서나 가능하지는 않다.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대량 소비시대에서만이 있을 수 있다. 다라서 산업사회의 단계에서 그것은 거의 사회의 필연적인 압력단체로 등장하게 마련이다.
1960년대엔 이런 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져갔다. 60년4월1일「네덜란드」의「헤이그」에선 미국·영국·「네덜란드」·「벨기에」·호주 등의 대표들이 모여 국제 소비자운동기구를 창설한 바 있었다.
「유럽」지역에선 이때『「유럽」검사 반』과 같은 조직이 생겼다. 이들은 모든 상품을 실험이나 검사를 통해「체크」한다. 원천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한다.
상품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사회에선「서비스」도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서비스」의 불성실·불친절도 마땅히 소비자보호 정신에 어긋난다. 고장난 냉장고를 고쳐달라고 몇 번을 호소해도 대답만 하는「애프터·서비스」, 고객에게「코피」잔을 던지듯이 놓고 가는 다방「레지」는 소비자를 얕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자보호 운동은 이젠「슬로건」에서 입법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다만 입만으로 엄포를 놓는 운동으로는 실효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것은 민선 정치인들에 의해 입법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여성단체들이 소비자보호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단계다. 우리도 점차 대량 소비시대로 가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소비자는 기선을 놓치지 말고 왕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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