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금자리 떠난 백로떼|어린이들 돌팔매질·당국의 무관심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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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의(백의)의 순례자」백로가 수난을 겪고 있다. 경기도이천군대월면군염리 인평농장(관리인 안강준·37)뒷산의 백로집단번식지가 당국의 무관심과 마을어린이를의 행패로 폐허로 변해 버렸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은 한강과 늪지대를 끼고있어 6·25동란 전까지는 해마다 4∼10월 사이에 수천마리의 백로가 날아들어 여름을 지내던곳.
동란이후 무질서한 남벌과 포획으로 20여년동안 백로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5백여마리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같이 옛 서식처를 찾은 백로는 지난4월초부터 날아들기 시작, 중순쯤에는 모두 1천여 마리가 넘었다.
백로떼들은 이곳 1천5백여평의 야산 소나무마다 2∼5개의 둥지를 만들고 저마다 다투는 듯 알을 낳기 시작, 포란에 들어 갔다.
5월도 이들이 한창 부화하던 당시 모든 소나무에는 백로가 앉아 멀리서보면 흰눈이 쌓인듯 온산이 하얗게 변해 일대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백로의 수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주민들은 모처럼 찾아온 백로떼를 보고 기뻐했으나 이마을 일부어린이들과 이웃마을(송당리) 어린이들이 이번식지에 들어가 알을 훔쳐 깨뜨리기 시작했다. 「농장관리인 안씨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백로가 포란하고있는 소나무에 올라가 알을 집어내거나 가지를 흔들어 둥지를 통째로 땅에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백로 집단번식지의 소나무들은 .모두15년생 안팎으로 높이가 7∼10m밖에안돼 어린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행패는 마을어린이들의 심심풀이로변해 일요일이면 20∼30여명씩모여 백로를 괴롭혔다.
어린이들은 소나무를 흔들어 알을 떨어뜨리는데 그치지 않고 포란중인 어미백로에게 돌팔매질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포란중인 어미백로가 포란을 포기, 둥지를 떠나면 어린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안씨에따르면 이같은 돌팔매질로 10여마리가 부상했으며 그가운데 1마리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것이다.
이같은 어린이를의 행패를 막기위해 안씨이외에도 김형재씨(39)등 주민들이나섰으나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한함중에 백로떼들을 기습했다.
이때문에 백로알 2천여개가 모두 깨져 1마리도 부화하지못했고 모처럼 찾아온 백로떼들은 모두 이곳을 떠나버렸다.
김씨등 주민들은 이사실을 경찰과 면사무소에 알리고 「보호」를 요청했으나 이때는 이미 백로가 자취를 감춘뒤였다.
이에 대해 조류학자 원병오박사(경희대교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지방행정당국에서 빨리 실태를 파악, 보호에 나서 어린이들의 행패를 막았어야 했다』고 말하고 주민들의 계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원교수는 또 『지금이라도 늦지않았으니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지시기면 내년쯤 다시 찾아올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일상·김주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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