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딩」의 경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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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류의 장래는 불행하게도 희망보다는 절망에 차 있는 것 같다.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에겐 관심 밖의 문제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을 만족하는 돼지이기보다는 내일을 걱정하는「소크라테스」가 되려는 자세야말로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생활철학이다.
요즘 체한 중인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K·볼딩」교수(65·「콜로라도」대학)는 향후 인류의 행과 불행을 한마디로「에너지」원의 개발에 걸고 있었다. 지난 세기를 돌이켜보면 문명의 횃불로서 화석연료(석탄·석유)가 기여한 바는 엄청나다. 그것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런「에너지」는 길어도 앞으로 1세기 안에 그 불길이 꺼질 것이라고 한다. 그땐 대체「에너지」의 개발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마저 전망은 밝지 않다. 그 하나로 핵연료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비용에 있어서 결코 석유수준의 안가를 바랄 수 없다. 더구나 핵연료가 타고난 찌꺼기의 처리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현대의 과학수준으로는 달리 묘안이 없다.
문제는 이것뿐이 아니다고 모든 나라들은 농업생산에 채찍질을 가함으로써 오히려 토질이 악화되고, 삼림도 역시 인구증가에 쫓겨 날로 줄어든다. 생활환경은 따라서 나빠지기만 한다.
핵전쟁의 위협도 앞으로 늘어나면 늘었지 줄지는 않고 있다. 「볼딩」교수는 매년 핵전쟁의 가능성이 1%씩 증가한다면 1세기 후엔 이미 63%로, 2백년 후 엔 87%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탁상계산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런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조그만 근거는 된다.
그럼 인류에겐 장미가 없단 말인가.「볼딩」교수의 해답엔 귀를 기울여 볼만하다. 윤리·사회·종교, 그리고 정치의 가변성에 대한 기대이다. 그것은 어쩌면 머리카락에 매어 달린 희망의 상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이 최선의 기대라 할 수밖에 없다면 인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가치의 개발이야말로 인류의 숙명적인 과제인 것 같다.
종교에 대한 확신이나 신념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도덕과 윤리의 척도를 갖게 할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의 정치는 결코 절망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명의 난폭한 질주 속에서 인류가 체험하는 가장 비참한 상황은 역시 정신문화의 상실이다. 이제나마 그것에 대한 자각과 각성의 소리가 근엄한 경종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희망의 신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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