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크타드」총회의 「말」과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나이로비」의 「운크타드」4차 총회는 결국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1백53개국의 3천여 참가대표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의는 현재 세계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파동 이후 잇따른 국제협력회의가 그러했듯이 이번 회의도 문제의 직접 해결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문제의 핵심을 한번 더 부각시키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빈부국들의 보다 적극적인 문제제시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번 총회의 현실적인 쟁점으로 제기된 1차 상품 가격안정 문제나 빈국의 외채경감문제 등은 이미 지난해의 「유엔」자원총회 이후 줄곧 이해가 엇갈려온 「이슈」들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항 각국의 이해상반이 근원적으로는 선진공업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빈부격차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에 개도국들의 「블록」화 추세는 선진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듯하다.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의한 쌍방의 「정치적 선의」를 배제한다면 어떤 문제해결도 불가능하다는 경험이 이번에도 재확인될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나이로비」의 정치적 함축을 애써 부인하려는 선진 공업국들의 노력은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이 의의에 참석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제3세계에 대해 『「슬로건」과 문제해결, 말과 현실 중에서 하나를』택하도록 경고한바 있다.
그러나 해결해야할 문제도 현실도 모두 교착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이 같은 교착을 타개하기 위해 더욱 많은 「말」이 필요하다는 제3세계의 신념은 결국 선진국의 그것과 평행적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오직 가능한 길은 「말」과 「현실」이 반드시 선택적인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쌍방에 의해 폭넓게 수용되는 길뿐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선진국들은 세계적인 빈곤의 본질과 그들이 낯익혀온 부의 지배원리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면 개도국들은 자신이 행사할 수 있게된 영향력을 절도 있게 사용한다는 자제가 필요하다. 경제질서의 급격한 혼란이 초래하는 손실은 이제 어느 특정지역만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1차 상품의 수입국인 우리로서는 이번 회의에서 대외채무가 누적된 개도국들에 대한 경협확대방안만이라도 진지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싶다. 연말까지 4백억「달러」를 넘어설 개도국들의 경상적자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시급한 대책이 강구되어야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적자누증이 지속된다면 새로운 경제질서의 확립은 고사하고 당장의 무역안정 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도국의 1차 상품 수출소득을 보장하는 문제는 이번 회의에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일 기미가 없는 것 같다. 「키신저」의 「자원은행」설치제안이나 개도국들의 가격안정기금구강은 일견 완위재고의 유용성에 착안한 듯 하나 그 실질은 매우 다른 것 같다. 자원은행 안은 가격안정에 주로 관심을 가진 대신 기금구상은 수출소득의 보장을 우선시키고 있어 접근방식이 서로 다르다.
이미 미국은 기금 안에 명백히 난색을 보인바 있어 이번 회의에서도 결말이 맺어질 것 갈지 않다. 현재 따로 진행중인 27개국「파리」경협회의에서도 이 같은 견해차이는 좁혀질 여지가 없기 때문에 1차 상품을 둘러싼 선후진국간의 공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또 다른 자원파동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