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No' 소리를 언제 들었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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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분위기가 사건을 지배한다’는 사회경제학 가설이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를 이루려는 인간의 충동이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이와 맞물려 사건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주로 증권시장 예측에 사용되는 가설인데 엊그제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청문회에서 다시 한번 입증됐다.

 GM이 점화장치 결함을 10년이나 숨겨왔는데, 알고 보니 600원이면 교체할 수 있는 부품이더라는 거다. 이를 쉬쉬하는 사이 운전자 여럿이 목숨을 잃었고, GM은 리콜 비용은 물론 수조원에 달하는 보상금·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가 됐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은 GM의 관료적 문화와 비용 절감 지상주의에 기인한다는 게 청문회의 결론이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라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돈 드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걸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대부분 멀쩡한데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르는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돈을 쓴다고?

 당장 형틀에 오른 건 GM이지만 어느 기업, 어느 조직, 어느 사회가 거기서 자유로울지 의문이다. 실제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박해받는 건 동서고금이 매한가지 아닌가 말이다. 영국 정치인 필립 체스터필드가 18세기에 이미 교훈을 남겼다.

“충고는 좀처럼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충고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충고를 가장 경원한다.”(『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오죽하면 범절 따지는 공자까지 이런 말을 했을까. “임금을 섬기는데 간언이 잦으면 욕을 보게 되고, 친구와 사귀는데 조언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논어』)

 듣기 싫은 소리를 자꾸 하면 이로울 게 없다. 그런데 하지 않으면 결국 해롭다는 게 문제다. 쉬쉬하는 사이 그 기업, 조직, 사회가 뼛속부터 병들어가는 까닭이다. 병든 조직의 구성원이 건강할 수 있겠나. 서열, 상명하복이 심한 우리 사회는 특히나 고위험군일 터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리더뿐이다. 권력이 큰 절대 지도자일수록 귀를 열어야 한다. 거슬리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하고 들을 준비가 돼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올바른 지적에는 보상이 따르고 설령 잘못됐더라도 불이익이 없다는 걸 온 구성원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내가 이끄는 조직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리트머스 시험지가 있다. 최근 몇 달 새 아랫사람한테서 “노(No)”라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의심스럽다. 6개월 이상이라면 100%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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