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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대 고갱 그림 … 부엌에 건 노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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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44년 전 분실된 폴 고갱의 ‘테이블 위의 과일’(왼쪽)과 피에르 보나르의 ‘두 개의 안락의자와 여인’. 이탈리아 경찰은 2일 로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은퇴 노동자의 집에서 찾아낸 두 작품을 공개했다. 1975년 분실물 경매에서 4만5000리라(약 3만3000원)에 팔린 두 작품의 현재 감정가는 각각 최대 4000만 달러(약 424억원), 80만 달러(약 8억7000만원)에 이른다. [로마 로이터=뉴스1]

1975년 이탈리아 토리노의 피아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차 분실물 경매에서 그림 두 장을 샀다. 당시 돈으로 4만5000리라(약 3만3000원)를 들였다. 노동자는 토리노에서도, 은퇴해서 시칠리아에 살 때도 부엌에 그림을 걸어놓고 즐겼다. 두 그림이 영국 런던에서 도난당한 폴 고갱과 피에르 보나르의 400억원대 작품이란 사실을 모른 채였다.

 이탈리아 경찰은 2일(현지시간) 44년간 분실된 것으로 여겨졌던 고갱의 ‘테이블 위의 과일’(또는 ‘작은 개가 있는 정물화’)와 보나르의 ‘두 개의 안락의자와 여인’이란 작품을 공개했다. 고갱 작품의 감정가는 1400만~4000만 달러(약 148억~424억원), 보나르 작품의 경우엔 80만 달러(약 8억7000만원)다.

 두 그림은 당초 런던의 한 저택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1970년 6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세 명의 도둑은 도난 경보기 기술자라고 밝히고 저택에 들어갔다. 이들은 도난 경보기를 고치는 척하다가 가사 도우미에게 커피를 요구했고, 가사 도우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림을 오려 도주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파리에서 토리노로 향하는 기차 안에 그림을 버렸다. 이탈리아 철도회사의 분실물 센터에 처박혀 있다가 5년 뒤 경매를 통해 피아트 노동자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그림의 소재가 파악된 건 지난해 여름이다. 건축을 공부하는 노동자의 아들이 작품들이 명화 도록에 나오는 진품과 유사하다고 여기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알려진 것이다.

 그림의 원 소유주인 마틸다 막스는 영국의 백화점 체인 ‘막스 앤 스펜서’ 창업자인 마이클 막스의 딸이다. 그는 그림을 도난당하기 전 이미 세상을 떴고 자녀도 남기지 않았다. 이탈리아 당국은 “그림의 원 소유주가 숨졌고 상속받을 후손을 남기지 않은 상태”라며 “노동자 가족들은 그림을 돌려받길 원하고 있으나 판사가 두 그림의 운명을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이탈리아 경찰 내에 문화유적을 전담하는 팀이 맡았다. 1969년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특별수사팀이다. 전담팀은 지난해에도 2002년 이탈리아 사보나에 항에 정박한 미국인 부호의 요트에서 도난당한 마르크 샤갈의 ‘꽃다발 위의 나부(裸婦)’를 이탈리아 볼로냐의 한 개인 소장자의 집에서 되찾았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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