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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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처음으로 미국의 문물을 견문한 중국대사는 『공·맹이 우리를 속였다』고 탄식했다. 그는 유교가 중국인의 과학적 사고력을 시들게 만들었다고 말하려했던 것이다.
일본이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과학의 힘에 의해서였다. 노.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정신력이 아니라 사실은 과학의 힘이었다.
그 때의 일본함대의 주포는 유압「펌프」로 조작되었었다. 그러나 「러시아」함대는 수동식이었다.
화약의 질도 일본함대 쪽이 우수했었다. 주포의 사정거리도 일본함대의 3천m에 비해 「러시아」쪽은 2천m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함대가 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는 과학에 묻혀 살고 있다. 「스포츠」까지도 과학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육상계가 뒤지고 있는 것도 과학적 훈련법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뮌헨·올림픽」에서 1백m와 2백m에서 소련의 「보르조프」선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준 것은 「컴퓨터」였다.
소련의 과학자들은 「보르조프」가 달리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로 분석하여 이를 훈련에 활용토록 했던 것이다.
심장의 박동을 측정하고 여러 가지 근육의 힘을 계산하여 어린이들의 적성을 검사해 내는 나라들도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한다면 청소년을 몇 년씩이나 맹훈련시킨 끝에 결국 「마라톤」선수로서의 적성이 없다고 알게되는 낭비도 모면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린이에게 종두처럼 「스포츠」의 충동을 심어놓는 실험을 하고있는 동구의 나라들도 있다.
이렇게되면 「스포츠」는 이미 재미로 하는 운동이 아니다. 선수들도 「컴퓨터」에 의해 움직이는 「로보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과학은 우리의 생활에서 재미와 멋을 앗아가고 있는 면도 있다. 「컴퓨터」의 힘으로 운동선수가 우승한다고 자랑할 일도 되지 못한다.
그것은 또 우리네 생활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주변은 이런 것을 염려하리 만큼 과학화되어 있지 않다. 「컴퓨터」가 있다해도 이것을 「스포츠」에 활용할 만큼 과학적 사고력이 성숙되어 있지도 못하다.
스포츠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아쉬운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력인 것이다. 학교교육에서도 어린이들에게 과학적 지식을 불어넣기는 해도 과학적 사고력을 키워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래서 과학이 생활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 또 비합리적인 것들이 판치게 된다. 아무리 9년째 과학의 날을 맞는 오늘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과학을 모르면서 살고있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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