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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걸렸는데 사표 대신 영전 … 청와대 행정관 특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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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 나와 있던 기획재정부 4급 공무원 A씨는 지난해 11월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의 내부 감찰에서 대기업으로부터 상품권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기재부로 복귀 조치됐다. 당시 청와대는 A씨의 부서 복귀에 대해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돌려보내는 것 자체가 일종의 징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지난달 17일 기재부 인사 때 과장급 주요 보직을 받았다. 해당 보직은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통상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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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와 함께 공직기강팀에 적발된 B씨(당시 4급)는 청와대 행정관에서 경질되자 공정거래위원회로 돌아가 대기하다 지난 2월 퇴직했다. 대기업 임원에게 식사대접을 받고 접대 골프를 쳤던 B씨는 공정위 핵심 과장을 지낸 경력을 배경으로 대형 로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처럼 대기업으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은 혐의로 청와대에서 쫓겨난 공무원들이 오히려 원 부서에서 주요 보직을 꿰차거나 퇴직 후 전관예우를 받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청와대와 기재부·금융위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서 3~5급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공직기강팀으로부터 비리를 적발당한 공무원은 모두 5명이다. 4명은 직무 관련성이 큰 대기업으로부터 식사·골프 접대와 수백만원 상당의 상품권 등을 받았다. 국무조정실에서 청와대 기후환경비서관실에 파견됐던 3급 공무원 D씨는 공용카드를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근무지를 무단 이탈한 처신이 문제였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이후 이들을 원 부처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5명 중 4명이 해당 부처에서 징계를 받지도 않고 오히려 주요 보직에 발령된 것을 놓고 청와대와 각 부처는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해당 부처에서는 “청와대에서 징계를 요구하지 않았고, 징계를 할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비위 사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므로 조치가 필요하다면 청와대에서 사실관계 통보나 지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 인사담당자도 “청와대로부터 비위 통보나 징계 요구가 온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이 때문에 정기 인사 때 다른 과장급 과 함께 인사 발령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말은 다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해당 공무원들을 원복시키면서 비리 혐의를 적은 꼬리표를 달아 보냈다”며 “현재 청와대 소속이 아닌 공무원들을 청와대가 징계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해당 부처에서 처리하라는 취지로 돌려보냈는데 각 부처가 별다른 징계 조치를 안 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가 직원의 비리 혐의를 축소 발표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21일 기자들에게 A·B·C씨 등 경제금융비서관실 행정관 3명의 원복 조치를 알리면서 “한 명만 실제 골프 접대를 받고 소액의 상품권을 받았다. 접대 시점도 청와대 근무 이전”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두 명은 본인의 희망과 인사 요인에 따른 교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결국 이들 3명은 모두 비리 혐의로 청와대를 떠났다. 이 중 B씨는 대통령 순방 중 접대를 받은 혐의도 있다.

 또한 당시 청와대가 밝히지 않은 기후환경비서관실 D씨, 공직기강비서관실 E씨의 케이스가 추가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축소·은폐가 아니라 당시 확인 내용만 밝힌 것이었고, 그 이후 추가 혐의와 대상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진석·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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