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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금전신탁 가입한도 5000만원 추진 … "소비자 보호" vs "규제완화 역행"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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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동양 사태 때 보시지 않았습니까?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5000만원의 한도 설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게 근본적 해결책이 됩니까?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새로운 규제가 될 수도 있어요.”

 지난달 21일 제324회 규제개혁위원회 정기 회의가 열린 정부 서울청사 10층 대회의실. 특정금전신탁(특금) 최저 가입한도를 5000만원으로 설정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놓고 금융위원회 담당자들과 규개위원들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다.

 특금은 금융 소비자가 직접 투자 대상 종목과 수량을 지정해 금융사에 운용을 맡기는 상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금융 소비자들은 펀드 같은 불특정 금전신탁과 마찬가지로 금융사가 권하는 종목에 투자해 왔다. 부작용은 지난해 동양그룹 사태 때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동양증권 등이 위험성 높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기업어음(CP) 등을 “안전하다”며 특금 고객들에게 대거 판매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방조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5000만원 한도 설정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내놓았다. 2월 20일 청와대 업무보고 때도 이 내용을 중점적으로 보고했다.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소비자 보호’가 최대 화두였던 만큼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규제완화 열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공교롭게도 끝장토론 다음날 열린 규개위 회의에서 대부분의 규개위원들이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회의는 규제 완화와 소비자 보호라는 양대 가치의 충돌 현장이 돼버렸다.

 김태준 규개위원장 직무대리 겸 경제분과위원장은 “규개위원들이 ‘가입금액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의 규제는 예전에도 많이 나왔지만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소비자의 금융상품 이용 권한을 침해하는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다’는 등 반대 의견을 많이 내놓았다”며 “이 때문에 개정안 통과를 보류했고 4월 4일 정기 회의 때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금액 한도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3월 31일 4개 은행이 KT ENS 발행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투자하는 특금을 불완전 판매한 정황이 드러난 것처럼 동양 사태가 아닌 잠재적인 피해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안창국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차원에서 5000만원 한도 설정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이런 기조 하에서 이견을 좁히기 위해 규개위원들과 대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모든 중앙행정기관은 법령의 제·개정 시 의무적으로 규개위의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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