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수상에 임명된 화국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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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경7일 로이터합동】중공의 제2인자가 된 화국봉은 불과 7년만에 부성장에서 수상서리가 되고 이번에 드디어 당 제1부주석 겸 수상이 되었다.
그는 한때 모택동의 지명된 후계자였던 임표의 규탄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고 금년 초 제1부수상 등소평을 제치고 발탁됨으로써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등의 정치권력이 당내 고위극좌파들의 수중으로 넘어감에 따라 힘의 진공상태가 생겼을 때 그는「급진파」「온건파」어느 쪽에도 가담치 않았고 현재 공안부장으로 혼란기를 수습할 가장 이상적인 타협적 인물로 등장했다. 화는 1920년께에 산서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55년 호남성 상담현공산당 서기, 56년10월 호남성 정부문화교육부장이 됐고 악천후와「대약진운동」의 실패에 뒤이은 59년의 대 흉작 때에 호남성의 식량배급「절약운동」을 맡았다.
그는 64년 제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 호남성 대표로 참석했고 65년 모택동의 출생지인 조산의 중요한 관개계획의 책임을 맡음으로써 농업전문가로 등장했다.
화는 69년4월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돼 처음으로 전국무대에 진출했으며 70년12월 호남성 혁명위원회대리주임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73년8월 정치국원이 되어 보안관계를 맡았다. 75년 초 전국 당 대회에서 부수상 겸 공안상으로 확인되었다. 그를 만난 한 서방외교사절은 그가 빈틈없지만 아주 고지식하지는 않은 사람이며 그의「매너」는 사근사근하고 거의 애교까지 넘친다고 말하고『설사 그가 강철의 주먹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는 그것을「벨벳」장갑 속에 숨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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