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없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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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길가에 떨어진 남의 물건을 주워 갖지 않는다는 「도불습유」의 아름다운 사회, 도둑 없는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려는 인간의 간절한 소망은 과연 이뤄질 수 없는 것일까.
치안본부가 「도둑 없는 내 고장 만들기」운동을 제창하고 도범 일제 소탕 작전에 나선 지 열흘이 됐다. 소탕 작전 개시 1주일만에 무려 3천6백72명의 각종 도범을 잡았다 하니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로써도 도둑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한 시민들이 수미를 펴기에는 아직 이르다. 경찰 병력의 대부분이 집중적으로 투입된 삼엄하기 그지없는 일제 소탕 기간 중에조차 교묘히 수사망을 뚫고 경찰 수사의 허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천5백60건이나 되는 도범이 발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 도둑은 급자기 수효가 늘어나고 있을뿐더러 그 범죄 수법과 범행 경향도 나날이 지능화·광역화하면서 시민 생활을 일상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실정임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긋지긋한 체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바다.
도둑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고 있으면, 시민들이 밤낮없는 도둑의 행패로 인해 「노이로제」가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겠으며, 거의 모든 시민들이 도둑 막기에 얼마만큼 충격을 곤두세우며 고심하고 있는가는 우리나라 도시 주택들의 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중세 「유럽」의 봉건영주들은 외적의 침입과 백성들의 반란에 대비하여 성곽 안에서 살았으나 요즘 우리나라 도시민들은 도둑을 막기 위해 주택 아닌 「뇌옥」에 갇혀 살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모든 집들은 하나같이 철제 대문에 쇠 빗장과 자물쇠를 채우고 높은 담 위에 가시철망과 유리 조각을 박고 창마다 쇠창살을 달고 있는 꼴사나운 가옥 구조가 아닌가. 지금은 자물쇠와 철조망과 쇠창살이 없는 것이 도리어 낯설고 이상스럽게 느껴지게끔 되었다. 이러한 꼴은 동남아에서도 우리나라 말고 어디서 볼 수 있는가.
모든 사람을 일단 도둑시하고 불신하는 이 기막힌 세태를 시급히 바로 잡는 제1보는 우선 도둑을 없애는 일이다.
도둑 피해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경찰의 범죄 예방 능력의 향상·강화와 어김없는 검거다. 「검거야말로 최고의 범죄 예방법」이며 어떤 도둑도 반드시 검거되어 법에 의한 엄중한 처벌을 받고 만다는 실증을 정착시키는 일임은 본 난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일관된 주장이다.
경찰의 범죄 예방 및 검거 활동과 함께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라 하겠다. 이번의 도범 일제 소탕 작전과 「도둑 없는 내 고장 만들기」운동에 시민들은 방관하지 말고 발벗고 나서야만 할 것이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 못 당한다」는 속담을 들먹일 것도 없이 도둑에게 시달려 온 시민들은 부족한 경찰 병력을 측면에서 도와 자발적으로 내 이웃과 고장을 지키는 방범 요원·수사 요원이 되어야 하겠다.
시민들의 신고·제보가 김대두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일이 이의 필요성을 증명해 준다 하겠다.
또 도둑과 같은 「병리적 인간」은 「병리적 현대 사회」의 부산물이란 사실을 바로 인식하여 범죄의 사회적 배경으로서의 사회적 환경을 바로잡는 사회 정책적·사회 교육적 노력도 아울러 경주해야 하겠다.
일찌기 공자는 대도가 행해지므로 도둑이 없어 대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 「대동」이란 이상 사회 구현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제 우리도 「도둑 없는 사회」 「철조망 없는 내 고장」을 만들기 위해 모든 슬기와 노력을 기울이는데 나태하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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