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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문제될 리 없다" … 김 과장 위조 적극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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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은 국가정보원이 1심에서 패소한 지난해 8월부터 수사·공판 지원은 권모(51·4급·자살 기도) 과장이, 증거 수집은 김모(48·4급·일명 김 사장) 과장이 역할을 분담하는 등 치밀하게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주한 중국대사관이 지난 2월 14일 “검찰 제출 공문 3건은 모두 위조”라고 밝히기 직전까지 김 과장은 “중국이라 문제 될 일 없다”며 간첩 피의자 유우성(34·중국명 류자강)씨의 옌볜(延邊)자치주 출입국기록을 추가로 위조한 사실도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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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증거조작 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31일 국정원 대공수사팀 기획담당 김 과장과 협조자 김모(61)씨를 모해증거위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같은 달 7일 공식 수사로 전환한 지 25일 만이다. 이들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 김용관)에 배당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과장은 지난해 12월 7~9일 협조자 김씨에게 유씨 변호인 측 싼허(三合)세관 정황설명서가 ‘사실과 다르다’는 답변서를 마련해오라고 부탁했다. 김씨가 “중국 군부인 싼허세관에서 공문을 받기 불가능하니 가짜를 만들어오는 수밖에 없다”고 하자 김 과장은 “중국에서 문제 될 리 없으니 걱정 마라”며 적극적으로 위조를 지시했다. 이에 김씨는 같은 달 14일 중국 칭다오(靑島)의 전문 위조업자에게 수수료 4만 위안(약 740만원)을 주며 싼허세관 가짜 관인까지 만들어 문서를 위조했다.

 김 과장은 중국대사관의 공식 회신으로 증거조작이 드러나기 직전인 2월 5일 김씨를 다시 만나 변호인 측 옌볜주 출입국기록 사본을 건넸다. 그러면서 “유씨가 2006년 5월 27일 다시 북한으로 갔다는 걸 보다 확실하게 뒷받침할 출입국기록과 공증서를 위조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다시 칭다오로 가서 “유씨가 5월 27일 다시 북한으로 나가 6월 10일 돌아온 사실을 증명한다”는 내용으로 옌볜주 공문을 위조했다. 변호인 측과 상반된 취지였다. 창춘(長春)시에서 공증서까지 위조해 전체 서류를 김 과장에게 건넸다. 김씨가 지난달 5일 자살을 기도하며 남긴 유서에서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을 받을 게 있다”고 언급한 게 옌볜주 출입국기록 위조 대가라고 수사팀은 파악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8월 1심 무죄선고 직후 여러 해 중국에서 근무했던 김 과장을 투입했다. 그는 중국 선양사범대에서 어학연수도 했다. 김 과장은 공판 담당인 권 과장과 긴밀히 협조하며 한국과 중국을 오갔고 문건 위조의 전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이 같은 해 7월 선양총영사관을 통해 지린(吉林)성 공안청에 유씨 출입국기록을 공식 요청했다가 ‘전례가 없다’며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앞서 권 과장이 수사단계에서 입수한 중국 출입국전산망(梅沙) 기록 원본을 같은 해 9월 말 선양총영사관 이모(48) 영사를 통해 제출했으나 공판검사는 “외형상 공문으로 보기 어렵다”며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김 과장은 같은 해 10월 중순 다른 협조자 김모(잠적)씨를 통해 허룽시 공안국 출입국기록을 위조한 뒤 공판담당 검사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담당 검사가 외교부를 통해 허룽시에 ‘발급사실 확인’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김 과장은 권 과장, 이 영사와 내부회의를 거쳐 11월 27일 국정원 대공수사팀 사무실에서 자신의 아내 명의로 인터넷 팩스사이트에 접속한 뒤 이 영사에게 위조 확인서를 보내는 수법을 썼다. 김 과장은 처음 스팸번호로 발신번호를 잘못 입력했다가 이 영사가 알려오자 재차 허룽시 대표번호를 입력해 발송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영사가 발신번호가 다른 발급확인서 두 부를 모두 재판부에 제출했다가 꼬리가 밟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과장의 변호인은 “김 과장이 서울 내곡동 청사 사무실 컴퓨터로 팩스를 보낸 게 아니다”라며 “인터넷팩스를 함께 써온 중국 협조자가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효식·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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