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예를 지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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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회사와의 기술제휴로 한국에 와서 근무하게된 서독인 기술자 D씨는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딱딱하고 굳어져 있어 회사에 무슨 사고라도 생긴줄 알고 매우 당황했었다 한다.
D씨는 사람들의 그런 표정이 바로「한국인의 무표정」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상대방을 당혹하게 하고 불쾌감마저 주는 무표정은 한국인의 고질적이고 대표적인 결례라고 할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에 서구식 예절이 흘러 들어온 이후 우리의 예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식의 무질서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기성세대는「군자의도」에 얽매여 희노애락의 감정뿐만 아니라 의견까지도 자유스럽게 나타내지 않는 무표정 속에 파묻혀 있는가 하면 새 세대는 고유의 예절은 무시한 채 서구식가운데 비록 나쁜 것일지라도 받아들이기 쉽고 편리한 것만 배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아직도 우리 가정에서는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가만히만 있는 어린이가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라는 식의 가정교육이 강요되다시피 되어 예의의 기초인 표정을 배우지 못하고 자라난 어린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예절이 몸에 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서구에서는 어릴 때부터 인사법이며 「테이블·스피치」「제스쳐」등 각종 예절의 기초적인「매너」를 일일이 가정교육으로 가르쳐 왔고 따라서『미안하다』든가 『감사하다』는 등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표현은 물론 국제적인 회의·모임에서도 자연스럽게 감정이나 의견을 표정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웃사람을 존경하고 서로 양보하는 등 고유의 미덕을 완전히 저버려서도 안될 것이므로 여기에 서구식의 동적표정과 표현을 가미, 우리의 예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하겠다.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 찾아온 전쟁의 공포, 가난의 압박, 변천하는 정치정세, 직업의 불안감등이 한국인의 무표정을 더욱 굳혀 놓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새해에는 밝고 명랑한 사회풍토조성에 참여, 예를 지키고 아끼는데 노력해야겠다. (조언=임동권 중앙대교수· 박대인 감리교 신대교수)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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