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등산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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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창때인 20대에 나는 적지 않은 암벽초등반을 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업적을 들라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금강산 집선봉동북동의 CⅡ봉 정면벽 등반을 내세운다.
이 CⅡ봉이라면 37년 여름 여인까지 낀 일행이 그 암계를 타고 올랐다가 밤새도록 죽을 고생을 했던 검봉이다.
그런데 CⅡ봉의 암계아닌 정면벽은 아래발치에서부터 정상까지 어마어마한 바위 덩어리하나가 매끈하게 치솟은 단애로 그 높이가 무려 9백여m나 되었다. 이 안묘공망 금강산일대에서 최고의 수직벽이며 또한 한우도 전체에서도 최대최난의 벼랑이 아닌가 싶다.
한마다로 서울인수봉정면벽의 3배가 넘는 것이다. 이 등반은 두세번은 실패,3년 연속 도전끝에 간신히 성공했다.
39년10월 첫 등반때는 엄흥섭을 비롯, 이재쇄(당시 조선영화사근무·현재 부산서 영화흥행사업)·채숙(농장경영)·방봉덕(6·25때 실종)등 모두 7명이었다.
실패의 원인은 장비부족. 가지고 간「자일」이 여유가 없어 선두「파트」가 죽죽 뻗어 올라가지 못하고 느릿느릿한 후속「파트」가 따라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다. 뒤늦게 엄과 나 둘만이 서둘러봤으나 때는 늦어 정상을 3백여m 남겨둔 곳에 이르자 어둠이 덮쳤다.
비까지 뿌려 하강이 불가능,「자일」로 몸들을 연결한 채 「침니」의 틈바구니에 간신히 발을 붙인 불안한 상태로 밤을 새웠다. 공교롭게도 이날 밤 빙우까지 쏟아져 천길벽상의「비바크」(노영)는 또 한번 뼈를 깎는 시련을 한아름 안겨 주었다.
CⅡ봉 정면벽의 2차 등반은 벼르고 벼른 끝에 이듬해인 40년8월에 결행. 그러나 또 다시 어이없는 실패였다.
이때「멤버」는 김정호(은행원·현재한일은전무)와 일본인 연야 (경전)·석정(일본대졸업후사업)둥 4명으로 한·일 혼성「팀」이었다.
그런데 김정호와 연야는 오르기도 전에 「컨디션」이 나빠 기권하고 석정과 단둘이 동행했는데 앞강선 내가 중간쯤 올랐을 때 1백여m나 처진 석정이 갑자기 『긴장! 오이 긴장!』하며 공포에 질린 비명을 터뜨렸다.
급히 하강해보니6척이 넘는 장신인 석정이 2,3m 떨어진「크랙」속에서 낮잠을 즐기고있는 파란 구렁이를 가리키며 새파랗게 질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이 기막힌 소극으로 결국 우리의 등반은 중지되었고 나는 단독 등정의 기회를 아깝게 놓쳐 버렸다.
이해 10월에 나는 주형렬과 집선봉「센터·피크」4연봉을 연등하고 이듬해(41년)10월 마침내 필성의 신념으로 CⅡ봉 정면벽 3차 등반에 나섰다.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인원은 서로「리드·클라이머」가 될 수 있는 2∼3명으로 제한하고 등반시간을「알프스」식인미명으로 하며 등반의「스피드」를 기하기로 했다.
여름동안 수영·달리기 등 훈련으로 손발을 맞췄던 주형렬·양두철 (철공소경영· 현재한국산악회이사) 과 결단, 10월2일 서울을 출발했다.
당시 백령회회장이던 엄흥섭씨(나의 등반「파트너」엄흥섭과는 동명이인)가 숙소인 법기암까지만 동행했다.
CⅡ봉 발치에 동틀 무렵인 6시에 도착, 우리는 쾌속전진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김·주·양의 순으로 전진하다가 작년 구렁이 있던 곳에서는 양·주·상가 되고 중간「테라스」(암벽에 선반처럼 튀어나와 있는 비교적 넓은 암벽)부터는 주·김·양의 순이 되어 톱니바퀴 돌아가듯 자유자재의 능률적인「클라이밍」이었다.
상단부에 이르자 거의 직립의 성누처럼 「크랙」과「페이스」가 거칠게 치솟아 올라갔다.
이 넓은 벽을 그대로 직상했다. 그러나 고투의 연속. 10여m의「침니」하나를 넘자 불거지게 튀어나온 턱바위가 가로막고, 이를 서너개의「하켄」으로 극복하자 다시 50여m의「지그재그」형「괴치」가 애를 먹인다. 여기서만 2시간이나 걸렸다.
그 위는「크랙」과「리슨(손끝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랜」보다 작은 균열)가 이어지는 직벽으로 무난, 드디어 정상을30여m 앞둔 곳에 이르렀는데 마치 노적봉「슬랜」의 마지막 역층「슬랩」과 같은 것이 10여m 뻗어 올라가 있어 최난의 고비가 되었다.
셋이 번갈아 전진과 「슬립」을 십여차례나 반복,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돌파했다. 이 역「슬랩」상단에는 다시 1O여m의 얄팍한 직벽,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감을 느끼며 여기를「트래버스」(Z자형으로 오르는 휜단)해 오르니 우리의 몸은 대망의 CⅡ봉 정상에 서있었다.
멀리 채하봉 너머로 이미 해가 진 하오6시, 꼭 12시간만의 개가였다.
이 집선봉 CⅡ봉 정면벽의 사상 첫 등반은 의지를 이끌고 가는 집념의 힘이 무엇임을 가르쳐주었고. 큰일일수록 크게 대비하고 또한 연찬함이 없이는 해낼 수 없다는 진리를 일찍이 일깨워준 값진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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