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쟁 상대는 버스·기차회사" 티켓 값 낮춰 세계 1위 항공사 된 라이언에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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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90년대 초반, 아일랜드의 항공사 라이언에어는 그저 유럽 소형 항공사 중 하나였다. 85년 영국~아일랜드 단일 노선에 취항하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10년간 적자에 허덕였다. 하지만 94년 괴짜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오리어리가 취임, 모든 것을 바꾼다.

 그는 미국 사우스웨스트를 벤치마킹해 단일 기종(보잉 737-800)만 운항케 했다. 기종을 통일하면 비용이 확 줄어든다. 비행기 구매단가를 낮출 수 있고, 정비사는 한 가지 기종의 정비훈련만 받으면 되니 유지보수 비용도 준다. 이착륙도 변두리 공항을 이용해 활주로 대기시간을 줄이고 비행기 회전율을 높였다.

 항공권(Boarding pass) 없이 인터넷으로 체크인하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승객이 집에서 프린트한 종이 한 장으로 바로 비행기에 탑승하니 공항 카운터 인력을 줄일 수 있었다. 부치는 짐에는 비용을 물려 짐을 최소화하도록 유도, 싣고 내리는 시간을 줄였다. 지정 좌석을 없애 승객이 자리 찾느라 엉키는 시간을 단축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새로운 경쟁의 틀이 있었기에 나왔다. 오리어리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다른 항공사가 아니다. 버스·기차회사다”고 했다. 이에 따라 비행기 티켓 값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아이디어가 속출한 것이다.

 이 회사의 형편없는 서비스는 처음엔 웃음거리로 됐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막상 외국에 갈 땐 라이언에어를 탔다. 단돈 몇만원에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가는 일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2003년 2137만 명이던 라이언에어의 승객 수는 2013년 7964만 명으로 10년 만에 약 4배가 됐다. 국제선 승객 수 기준 세계 1위다. 지금은 이 회사를 모방한 저가 항공사가 앞다퉈 생겨나고 있다.

 모든 시도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승무원을 모델로 한 비키니 달력이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승객에게 ‘비만요금’을 물리는 아이디어 등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티켓은 공짜인 카지노 비행기와 같은 엉뚱한 발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새로운 틀을 만드는 일은 때로 위험하다. 그러나 부딪힌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김성준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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