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에쿠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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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연극『에쿠우스』가 연장공연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여 갑자기 공연 중단되더니 이번에는 또 세무서로부터 과세통고를 받았다.
근 3개월간이나 공연이 성황을 이루고 관객이 1만 명이나 동원된 것은 우리나라 연극사상 처음 있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일이 마냥 좋게만 끝나는 법은 없는가 보다.
최근 시들어 가던「드라마」운동이 갑자기 되살아나고 있는데는 젊은이들이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는데 까닭이 있다. 젊음의「에너지」를 달리 발산시킬 마땅한 길이 없는 까닭도 있다.
특히『에쿠우스』에는 젊은이들이 정신적「카타르시스」를 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푸짐했다.
우선 대담한 무대장치며 음향효과·조명등이 항상 실험적이며 상식에 부정적인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았을 것이다.
특히 그 주제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도색영화를 몰래 보는 아버지의 구차스런 변명을 통해 기존세대의 위선을 벌거벗기는 대목에서 후련함을 느낀 관객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억압된 성 의식과 이지러진 종교와의 갈등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기존 적인 행동 율의 허 망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일종의 동증 요법을 받는다. 그리고 주인공이 정신병 의로부터 이 요법을 받는 동안 관객들도 묘한「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가 보다. 그것이 꼭「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정서의 순화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야콥·베르나이스」의 설처럼 이「드라마」가 관객의 마음속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의학상의 동증 요법 내지는「쇼크」요법과 같은 효과로 마음속에 쌓여 있던 울분을 발산시켜 준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단순한 호기심이 그처럼 많은 관객을 동원시킬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은 아슬아슬할 만큼 노골적인 대사를 자주 주고받는다. 주인공이 반 나의 여인을 부둥켜안고 무대 위에 뒹구는 대담한 장면도 지금까지의 무대 위에서는 없던 일이다.
이런 것들이 더욱 젊은 관객들에게 좋은 화제 거리가 되었음직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드라마」가 조금도 선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 것은 뭔지 모르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그 대사의 힘 때문이리라.
마지막장면에서 주인공은『나는 치료되었다!』고 절규하며 일어선다. 그런 그도 머리 위부터 흰 천을 쓰고 있다. 마치 사자처럼, 마치 뭔가를 상징하는 것처럼-.
『에쿠우스』의 공연이 중단된 데에는 공연법절차를 어겼다는 표면상 이유 말고도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 표현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돌고 있다.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왜 이「드라마」에 젊은이들이 몰렸는지를 전혀 모르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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