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식 가치관 강요-반 시오니즘 결의의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오니즘」을 인종차별주의의 한 형태로 규정한 10일의 「유엔」결의는 다른 대부분의「유엔」결의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뜻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이 결의안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대해 구체적인 제재가 가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파문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의안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시오니즘」이야말로 남아연방문제와 함께 현재 「유엔」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3세계 대 서방세계간의 대결상황을 상징하는 깃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시오니즘」을 제3세계식으로 규정하게 될 때 서방국가가 다국적기업에 의한 신 식민주의를 추진하고 있으며 구 경제질서가 북의 공업국들에 의한 남의 자원보유국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속박이라는 제3세계측의 비난도 보편적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방국가들 쪽에서 볼 때 「시오니즘」의 제3세계식 규정은 지금까지 국제정치의 도덕적 바탕을 이루어온 서구식 「에토스」를 제3세계의 가치관으로 바꿔버리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유엔」의 깃발을 서구식 문양에서 제3세계의 문양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방세계가 이미 느끼고 있는 명분상의 수세가 공식화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국에서만 「유엔」탈퇴문제가 내정 면에서 거론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4백만에 달하는 미국 내 유대인 사회가 도시집중적이며 특히 재계·언론계·정치계 등 소위「엘리트」층에 집중되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는 의회에 대한 압력단체(로비) 구실을 하는 공식 유대인단체가 14개나 된다.「모리스·아민타이」가 이끄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홍보위원회』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있는 이들 「로비」들은 거의 무소부재한 조직력을 가지고 「이스라엘」문제에 관한 의회의 모든 움직임을 관찰하고 모든 결정을 친「이스라엘」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선거자금과 유권자의 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인은 감히 이들 유대인「로비」의 감정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오니즘 에 관한 「유엔」의 결의안은 앞으로 미국 안의 「유엔」탈퇴여론을 고조시킬 것이 틀림없다.
다만 미국이 실제로 「유엔」에서 탈퇴할 것이냐는 문제는 정치적인 결단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여론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외신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