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싶은 이야기들|전국학련-나의 학생운동 이철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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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취조는 연일 계속됐다.
요인암살 음모를 『했지?』『안했소』가 반복됐다. 이러기를 만엿새, 그간 나는 한숨의 잠도 못잤다.
경찰은 12명이 두 조로 나누어 교대를 해서 한꺼번에 6명이 심문에 나섰다.
참으로 못견딜 고문이었다
차라리 몽둥이 찜질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학련 위원장이라 『봐준다』면서 잠을 안재웠다.
1주일 되던 날 그들은 4통의 자백서를 내 앞에 던졌다.
이른바 이덕원 홍관직 양근춘 오홍석의 자백서.
눈물이 핑 돌았다. 오죽 고문을 했으면 네동지가 허위자백을 했겠는가 생각하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래도 나는 『애국학도의 대표를 고문하는 너희야말로 민족반역자』라고 호통쳤다. 하지만 나를 때려잡기로 각본까지 쓴 그들에게 통할리 만무했다.
나는 체념하고 『너희 맘대로 써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젠한술 더떴다.
인촌이 거사자금을 대고 장택상 외무, 전진한 사회, 김준연의 원과 유진산씨가 배후 지원을 했다고 쓰라는 것이다.
참으로 악랄한 수법이었다. 차제에 정적을 싹 쓸어버리려는 술수였다.
나는 책장을 걷어차며 호령했다.
『나라를 세울때는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은 것들이 이제 애국자를 처단하기냐-.』 나는 지금까지한 허위자백을 전면 부인했다.
마침내 구속된지 19일 되던날 나는 검찰청으로 송치탰다.
그날 오전11시쯤 호출을 받아 성배서 뒤뜰에 나오니 「앰뷸런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 속엔 오홍석 홍관식 양량춘이 질펀히 누워 있지 않은가.
창백한 얼굴에 수염은 한치씩이나 기르고 띵띵 부은 얼굴에 모두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반죽음상태였다.
내가 들어가니 그들은 『위원장!』하고 부시시 일어나나를 얼싸안고 울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은 한결같이 발가벗긴채 「콘크리트」바닥에서 수없는 잠수함 고문(물고문)비행기고문(거꾸로 메다는 고문)을 당했다.
몇번인가 까무라쳤지만 허위자백이 나올 때까지 이 짓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도 오홍석군은 그때고문으로 지광이 신세를 지고있으며 홍관직군은 오른손 중지가 마비되어 있다는 검찰청 비둘기장(피의자 대기실)에서 이덕원군도 만났다. 그 역시 사색이었다.
조금 있으니 검찰청 들에서 학련가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학련동지들이 몰려와 학련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다.
우린 간단한 검사심문을 받고 저녁 놀이 깔릴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다음 날부터 이원희부장검사의 취조가 시작됐다. 검찰은 경찰과 달리 우리의 사리가 통했다. 특히 문제의 장본인인 위인환과의 대질심문에서 확신을 얻는 것 같았다.
감방에서는 양군이 1호, 이군이 2호, 홍군이 3호, 오군이 6호, 그리고 내가 시호감방신세를 졌다.
내게는 감방생활중 아름다운추억 하나가 있다. 당시 여학생부장 김창희양과 나는 교제하던 사이, 어느 날 그가 면회왔다. 그런데 그날 공교롭게 전주에 계신 아버님께서도 면회를 오셨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던 사이였으나 나의 면회를 계기로 첫인사를 나누고 김양은 지금의 내 아내가 됐다.
마침내 12월8일 요인암살극은 조작극으로 판명돼 오홍석 심근춘 홍관직 세 동지는 풀려났다.
그러나 나와 이덕원군은 「불법무기소지」라는 죄목으로 계속 수감됐다.
이 문제는 국회까지 비화돼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먼저 나온 동지가 요로에 진정해 세상에 알려졌다.
마침내 12월11일 제1회 국회제127차 본회의에서 김준연의원이 이문제를 들고 나왔다. 『왜정치하에서「데라우찌」총독을 암살하려 했다고 애국인사 105인을 검거, 처벌한 일이 있다. 지금 신생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이와 똑같은 사기극이 있다. 이철승군은 누가 뭐라고해도 건국의 공로자다. 그런 그를 잡아가두고 악독한 고문을 하니 이게 법치국가의 체통이냐』고 호통을 쳤다.
국회는 곧「인권보강문제」를 임시의제로 채택하고 128차 본희의에서 대정부질문을 폈다.
질의에 나선 의원은 김준연의원외 정준 김옥주 이항발 전진홍 이석주의원등.
그러나 답변에 나선 윤치영내무장관은 『이 문제는 사직당국에서 흑백을 가릴것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이철승씨가 권총과 폭탄을 소지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고 얼버무렸다.
의석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김상돈의원은 「대통령국회출석동의안」을 제출, 신익희의장이 이의 가결을 선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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