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은퇴 팁] 원금보장 금융상품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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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명수

은퇴자금은 절대 까먹어선 안 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목돈형성 등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은퇴 전의 자금운용방식과는 다르다.

 ‘원금보장’은 자금의 안정성을 원하는 은퇴자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이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원금을 지켜주고 약간의 수익도 얹어준다니 고마울 수밖에. 하지만 이 말엔 함정이 숨어 있다.

 원금 100% 보장 주가연계증권(ELS).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이 상품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발행사가 절대 손해 볼 일이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만기 3년짜리를 구입하면 3년 후 기초자산이 종가기준으로 최초 가입시점의 가격을 밑돌더라도 원금을 돌려준다. 그러나 기초자산이 가입시점의 가격을 웃돌 경우 차익의 일부만 돌려받는다. 나머지는 원금보장을 위해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금보장형 상품이 먹혀드는 건 투자자들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개인들은 주가의 바닥 국면에서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가가 상승하는 시기엔 위험은 과소평가된다. 그래서 원금보장형은 증시가 침체에 빠져 있을 때 많이 팔린다.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의 금융위기 때 그랬고, 2011년 10월 유럽의 재정위기 때도 그랬다. 당시 이 상품을 구입한 투자자들은 원금은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돈 버는 기회를 날려버렸다.

 원금보장형은 오히려 주가가 정점을 칠 때 투자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투자자는 별로 없다. 증시가 좋을 때 원금보장형 상품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주가가 내릴 일만 남은 상황에서 손해가 빤한 게임을 벌일 리 만무하다. 주가의 바닥 국면에선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포분위기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을 상대로 원금보장 장사를 할 수 있다. 결국 원금보장형 투자자는 수익을 포기한 대가로 많은 기회비용을 물어가며 불필요한 보장을 받는 셈이 된다. 경제엔 공짜가 없듯이 투자에서도 저절로 주어지는 원금보장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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