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항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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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 다니는 동생이 외출했다가 장발단속에 걸려 머리를 깎이고 들어왔다.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 멋있게 기른 머리였는데 그날따라 형님의 헐렁한 바지를 아무렇게나 걸쳐입었던게 어딘가 단정치 못한 느낌을 풍겼던 모양이다.
일진이 나빴다고 몹시 투덜거리는 장본인 못지 않게 옆에서 보기에도 깎은 머리는 더 낯설고 초라해 보였다.
남성사회엔들 「패션」이 없으란 법이 있는가. 언젠가 명동 R「호텔」에서 남성들의 모임을 본적이 있었는데 대개가 장발 일색이었다.
어떻게 경찰단속에 걸리지 않았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는데 조금도 퇴폐적이거나 비능률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진취적인 분위기를 느꼈음을 솔직이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손자가 부쳐온 사진을 보고 치렁한 머리 때문에 잘 알아보지 못하여 이 여자는 누구냐고 물어보시던 할머니 때문에 폭소도 했지만 외국에선 가족들의 머리를 주부가 손쉽게 「커트」 할수 있으므로 비싼 이발료를 치르지 않게 되어 경제적인 이득도 크다고 한다.
구태여 「칼러」위 몇㎝로 외형적인 규제를 돌것이 아니라 개성미를 살리며 자기의 본분을 다하도록 사회분위기로써 이끌어나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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