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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달라진 국어 교과서 … 교사는 환영한다는데, 글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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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국어 교과서는 12개 출판사, 총 16종이다. 일선 학교는 이중 하나를 선택한다. 국어교사들은 “어떤 교과서든지 작품성 높은 작품은 많이 실려 있지 않아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총 96권. 백과사전 권 수 얘기가 아니다. 현재 나와 있는 모든 중학교 국어교과서를 합한 수다. 국어교과서는 총 16종으로, 종마다 1~6까지 6권씩 있다. 각 학교는 이중 한 종의 교과서를 선택한다. 과거 국정 교과서 시절처럼 전국 모든 중학생이 똑같은 교과서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학교 교사진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교과서를 배운다는 얘기다.

 국어교과서 16종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까.

 우선 국어 교육 목표를 활동 위주의 감상·해석·표현으로 맞춘 새 교육과정을 담고 있다는 건 다 같다. 정미선 서울 동대문중 수석교사(국어)는 “시를 배울 때 기존 교과서는 단순히 특정 시의 특징과 주제만 담았다면, 바뀐 교과서는 비유·상징의 표현을 찾고 다른 시에 적용해 감상하는 활동 등을 대폭 늘렸다”고 설명했다. 교과서에 실린 시를 통해 비유·상징을 배운 뒤 다른 시에서 비유·상징을 찾는다거나, 자기 경험에 비춰 비유·상징을 표현해보기와 같은 활동 위주로 각 단원을 구성했다는 거다.

 이같은 편집방향을 지키면서 각 출판사는 읽기 자료를 더 강조한다거나, 아니면 문학과 쓰기를 연결한 활동을 제시하는 등 구성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일선 학교는 이런 교과서 특성을 파악해 학교 사정과 학생 수준을 고려해 알맞은 교과서를 채택한다. 강용철 서울 경희여중 교사는 “요새 아이들은 인터넷 발달로 수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정보를 단편적으로만 받아들일 뿐 적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떨어진다”며 “창의적으로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요구가 활동 위주 교과서 재편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신문·잡지·삽화·사진 등 다채로운 자료를 더 많이 담은 건 이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비판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도하게 활동 위주로만 개편됐다는 비판이다. 국어 교육 본연의 목표인 자국 언어로 된 작품성 뛰어난 좋은 글을 정독·다독하도록 이끄는 기능이 소홀해졌다는 것이다. 정미선 교사는 “각 단원마다 교육부가 제시하는 활동목표가 명확하기 때문에 각 출판사 집필진은 게재할 글을 선정 할 때 활동목표에 부합하는 글을 찾는 데 우선 주력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글이나 매체에 제시된 다양한 자료의 효과와 적절성을 평가하며 읽는다’라고 단원 목표가 주어지면 통계·그래픽 요소가 강한 글을 선정해 싣고, ‘근거를 들어 문학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방법을 이해한다’라는 목표에선 기계적으로 비평문을 싣는 식이다. 어떤 작품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떤 활동을 할 것이냐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국어만큼은 차라리 전국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작품을 담은 공통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김주환 안동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각 출판사 집필진에 따라 글을 선정하는 기준이나 범위가 제각각”이라며 “일부 교과서는 좋은 글을 찾고 선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기존 교과서를 짜깁기한 수준에 그친 것도 있다”고 분석했다.

 새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한 중학교 교사는 교과서 검정 과정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사는 “교과서 검토위원 중 한 명만 반대해도 출판사별 집필진이 추천한 작품을 싣지 못한다”며 "특정 이념·종교를 드러낸다거나, 차별·무시 등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거나, 저자의 주관적 관점이 드러나는 글은 작품성을 차치하고 제외된다”고 말했다. 어떤 시 제목이 특정 정치인 후원회와 이름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거부됐다가 격론 끝에 교과서에 겨우 실린 경우라든가 무속인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결국 채택에서 제외된 사례가 그런 예다. 문제를 제기한 교사는 “가장 좋은 글을 싣기보다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글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거꾸로 아직 제대로 검증이 끝나지도 않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교과서 작가로 이름을 올리는 등 뚜렷한 기준이 없다.

 국어교과서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 교과서는 일선 교사들 사이에선 대체로 환영받는 분위기다. 기존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 방식을 벗어나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으로 국어를 좀더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젠 교과서에 좀 덜 기대해야 할 때라는 주장을 한다. 강용철 교사는 “완결된 작품을 읽게 하자는 것과 다양한 활동을 하자는 주장은 그 동안 교과서가 새로 만들어질 때마다 수차례 반복돼온 오래된 논쟁”이라며 이렇게 제안했다.

 “영미권 국가에선 세익스피어 작품 하나를 놓고 한 학기 동안 깊이 있게 토론합니다. 교사가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교사가 수업할 때 교과서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자료를 풍부하게 준비하고 교과서 수록작품과 연관된 다른 작품을 학생에게 추천하고 함께 읽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새 교과서의 성패, 아니 국어 공교육의 성패가 교사의 손에 달려 있단 얘기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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