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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선 ‘민족=공동운명체’ … 분쟁 때 양보 기대 어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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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04면

로이터·AP=뉴시스, 신화통신

-지금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갈등이 치열하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나.
▶조세영(한)=“평화를 0, 전쟁을 10으로 본다면 지금은 7에 해당하는 위험 수준이다. 중국과 일본 간에 우발적 사건이 무력충돌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
▶기무라 간(일)=“위험성이 커졌다고 본다. 과거 한국과 중국, 일본은 정치 엘리트들의 타협으로 분쟁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국내 여론의 힘이 커져 정부가 제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상황을 일부 우익정치가에 의한 선동 탓으로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다.”
▶리궁중(중)=“청일전쟁 때와 달리 요즘 전쟁은 국제사회에서 제한이 크고, 효과도 약하다. 위험수위는 2~3 수준에 불과하다.”

민족주의 격돌 동북아 … 한·중·일 전문가 진단

-세계화가 대세인 지금 동북아에서 민족주의가 분출하는 이유는.
▶조세영=“냉전시절 한·중·일에 잠복됐던 민족주의가 탈냉전과 함께 고개를 든 것이다.”
▶리궁중=“중국의 부상에 따라 동북아 질서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재발한 것이다.”
▶기무라=“세계화로 인해 한·중·일 모두 국제관계에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서로 간의 중요성은 크게 낮아진 탓에 갈등이 커진 거다. 유럽연합은 세계화 이전에 만들어진 협력체제이므로 예외로 봐야 한다.”

-동북아 민족주의의 뿌리는 뭘까.
▶진징이(중)=“열강의 침략에 대한 대항정신이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전례없이 강력하게 발전했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우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추구했다. 지금 과거사 왜곡도 그 연장선이다. 이는 한·중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유인이 되고 있다.”
▶기무라=“동북아는 ‘민족은 공동운명체’란 픽션이 신봉되기 쉬운 환경이 존재한다.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한 민족이 절대시돼 역사나 영토 문제에서 양보가 불가능해졌다. 한·일, 중·일뿐 아니라 한·중 사이에도 고구려를 둘러싸고 역사갈등이 있지 않나. 민족과 거리를 두는 유럽에선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원류인 프랑크왕국이 어느 나라 역사에 속하느냐가 문제되지 않는다. 동북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처리가 변칙적으로 이뤄진 것도 민족주의 갈등의 한 원인이다. 또 한반도의 탈식민지화가 적어도 직접적으론 한국인의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었던 점도 중요하다. 이는 한국의 교섭력을 약화시켰고 한국인들에게 일본에 대한 ‘한’(恨)을 남겼다. 역으로 일부 일본인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식민지적 인식이 살아남는 원인도 됐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를 스스로의 힘으로 내쫓은 인도·베트남과의 차이다.”

-동북아에서 민족주의는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인가.
▶조세영=“그렇다. 한·중·일 경제교류조차 정치적 힘겨루기 대상이 되고 있다. 서로 믿지 못해 불이익을 자초하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포용적이고 열린 민족주의로 순화시켜야 한다.”
▶진징이=“한·중·일은 3국 협력사무국 설립 등 협력체제를 구축해 왔지만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으로 그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방울 단 사람이 방울을 풀어야 한다’는 말처럼 일본이 과거를 뉘우치도록 한국과 중국이 손을 잡아야 한다.”
▶기무라=“동북아 3국이 이웃이란 이유만으로 밀접하게 협력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일본과 중국은 여론의 저항이 강한 상대방과 굳이 협력을 강화하지 않아도, 인도나 아세안 국가 등 다른 지역과 협력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동북아도 EU 같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나.
▶기무라=“그럴 가능성은 작다. 한국이 생각하는 동북아의 중요성과 중국, 일본이 동북아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내수시장이 큰 중·일엔 국제관계에서 옵션이 많다. 무역의존도가 23%에 불과한 일본이 동북아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할 이유는 한국에 비하면 엄청나게 작다.”
▶조세영=“3년 전 영국과 프랑스는 양국군이 항공모함까지 공동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반면 동북아에선 중국이 항모 ‘랴오닝’을 취역시키자 한국과 일본에서 ‘우리도 항모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럽연합의 탄생은 각국이 어느 정도 주권을 포기한 결과 가능했다. 동북아 현실에선 아직 생각하기 힘든 얘기다.”

-지금 동북아 갈등은 여론에 편승한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세영=“그렇다. 지도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경쟁적으로 독도에 가 인증 사진을 찍거나 북방 4도를 방문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편협한 민족주의 대립을 부추기는 한 협력은 요원하다.”
▶진징이=“일본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일본의 지도자와 여론은 서로를 이용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여론도 정부의 우군이 돼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의 지도자들은 비교적 정확히 여론을 이끌어왔다.”
▶기무라=“외교관과 재계 인사 등 실무 엘리트들은 동북아 관계 개선을 바란다. 하지만 정치 엘리트들은 다르다. 어느 나라나 그들의 목적은 ‘정치적 지위의 유지’다. 여론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어렵다. 과거엔 힘이 컸던 ‘실무 엘리트’가 후퇴하고 ‘정치 엘리트’가 부상하는 건 한·중·일의 공통 현상이다. 이 때문에 한·일 간 타협이 더 어려워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동북아 민족주의가 직면한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조세영=“과거사와 영토 문제가 가장 우선이지만 긴 호흡으로 대처해야 한다. 민족주의 연구 대가인 베네딕트 앤더슨 교수는 2005년 방한 당시 ‘독도나 과거사는 통일보다는 작은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우리가 깊이 새겨들을 얘기다.”
▶진징이=“일본의 군국주의화와 우경화다. 그 다음이 중국은 대국주의화다. 1950년대 마오쩌둥이 ‘대국주의(큰 민족 우월주의)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궁중=“우선 긴박한 문제는 북핵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중국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거다. 중국의 발전은 무시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며 동북아 구조 변화를 주도하는 요소가 됐다. ‘중국 위협론’으로만 현상을 보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넓은 시야에서 중국의 위상이 크게 부상한 뒤 어떤 역할을 해야 건설적일지 이성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기무라=“세계화와 그에 따른 일본의 지위 저하가 큰 문제다. 포퓰리즘 정치와 경박한 민족주의 분출도 우려스럽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통일을 한·중·일이 어떻게 풀어야 하나.
▶조세영=“당사자인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토대로 북한에 한 단계 높은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가 풀리면 동북아 민족주의 대립도 완화된다.”
▶진징이=“북핵 문제는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동북아전략이 충돌한 결과다. 중국과 한국은 미국을 설득해 동북아를 안정시켜야 한다. 북한의 돌발행위에 대한 대비를 대북정치의 목표로 삼아선 안 된다.”
▶기무라=“솔직히 남북통일과 동북아 민족주의는 큰 관계가 없다. 중국과 일본의 여론은 북한에 무관심하다. 앞으로 민족주의가 강해질수록 중·일 모두 남북통일에 냉담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북한 문제를 단독으로 대처해야 할 처지에 몰릴 것이다.”

-동북아 민족주의가 향후 10년과 30년 뒤 어떻게 전개될까.
▶조세영=“지금의 갈등이 10년 안에 완화되긴 어렵다. 상황 악화를 막기조차 벅찰 거다.”
▶리궁중=“30년 뒤엔 한·중·일 국민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사업도 하게 될 것이다. 민족주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수준으로 순화될 거다.”
▶기무라=“향후 10년간 한국과 중국은 접근하고 일본은 태평양 국가들과 연계를 강화할 것이다. 3국 민족주의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다만 미·일 동맹에 매인 일본이 단독으로 전쟁을 할 가능성은 제로로 봐도 된다. 30년 뒤엔 3국 모두 인구감소·성장둔화로 완전히 다른 처지가 될 거다. 일본의 경험을 볼 때 중국도 경제성장이 멈추면 민족주의를 키워나갈 거다. 그 뒤 상황은 예측불가다.”

-한·중·일의 올바른 역할은.
▶조세영=“한국이 한발 먼저 민족주의를 순화시키면 중국과 일본은 이를 명분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중국과 일본은 북핵과 남북통일에서 경쟁 대신 협조해야 한다.”
▶진징이=“일본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하고 한국과 중국은 일본 내 정의의 세력과 협력해 군국주의를 막아야 한다. 한·중은 작은 차이는 무시하고 큰 틀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양국은 상호관계를 재배치할 시점에 직면했다. 이는 편협한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뜻한다.”
▶기무라=“한국은 정치 엘리트들이 ‘일본 여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면서 행동했으면 좋겠다. 역사나 영토 문제를 원칙론적으로 일본에 들이밀어도 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 외교는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게임’이란 전제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분쟁회피 체제’ 구축에 힘써야 한다. 지금처럼 국력을 전면적으로 표출하는 중국 외교는 미국의 경계심을 증폭시키고, 일본과 인도를 접근시켜 스스로에게 부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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