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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새 매출 4배 레고 신났네 … 안 팔리는 바비! 넌 끝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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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를 재현한 레고. 4287개 부품으로 구성된 높이 45㎝, 폭 26㎝, 길이 102㎝의 대작이다. 레고의 열혈팬인 영국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지난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타워브리지 레고를 샀다”고 말했다. [사진 레고]

‘이 덴마크 기업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the hottest) 장난감 회사가 됐을까.’

 지난 6일 발간된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레고를 집중 조명했다. 10년 전 파산 직전에 이르렀던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만이 아니다. 최근 한 달간 레고는 뉴욕타임스·블룸버그·가디언·옵서버 등 주요 언론에 잇따라 등장했다. “가장 성공적인 전통과 혁신의 균형” “애플의 성공스토리엔 질렸다. 레고야말로 상상력의 힘을 이해하는 기업이다” 등 찬사일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레고가 보여준 수치는 눈부시다. 지난해 매출은 10% 성장해 46억 달러(약 4조9200억원), 순이익은 9% 성장해 11억3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였다. 매출은 세계 2위지만 순이익에서 1위인 마텔(9억800만 달러)을 꺾었다.

 레고는 바비를 만드는 마텔과 보드게임 모노폴리를 만드는 하스브로에 항상 밀렸다. 차이는 컸다. 2004년 레고의 매출이 10억 달러 남짓일 때 마텔은 50억 달러, 하스브로는 30억 달러를 기록했다. 10년 뒤 레고의 매출은 네 배 이상 뛰었다. 하스브로를 2012년 완전히 제쳤고 마텔의 턱 아래까지 치고 올라온 셈이다.

 장난감 산업은 까다롭다고 여겨진다. 쉽게 싫증을 내는 소비자(어린이)를 상대하는 데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첨단 전자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신체 활동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 장난감 산업은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세상에서 설 자리가 좁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고군분투할 때 레고만은 달랐다.

 레고는 1932년 덴마크의 작은 도시 빌룬트에서 설립됐다. 목수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설립한 목제 완구 회사였다. 이름은 덴마크어로 ‘잘 논다’는 뜻을 가진 ‘레그 고트(Leg Godt)’에서 나왔다. 끼워 맞추는 형태의 ‘시스템’이 적용된 브릭 장난감으로 자리 잡은 건 1958년 특허를 내면서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제품군은 늘어났고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를 열었다. ‘레고 사람’인 미니 피규어가 출시되면서 단순한 조립 장난감은 서사가 가능한 살아 있는 장난감이 됐다. 90년대 말까지 회사는 잘나갔다. 위기는 98년에 왔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첫 적자를 기록했고 회사는 추락을 거듭했다. 2003~2004년 적자는 5억 달러를 넘겼다.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처음으로 가족 밖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인력을 감축하고 레고랜드도 팔았다. 1만2900가지에 이르던 부품 종류도 7000가지로 줄였다.

 이와 함께 방송·영화사 등 미디어기업과의 협업에 적극 나섰다. 스타워즈·해리포터·배트맨·인디애나존스·반지의제왕·스폰지밥 등 대박 콘텐트들이 레고로 재탄생했다. 제품 캐릭터가 등장하는 비디오 게임도 나왔다. 올해 초엔 워너브러더스와 함께 제작한 영화를 선보였다. ‘레고 무비’다. 한국 내 성적은 부진하지만 전 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개봉 첫 주 69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려 역대 겨울 개봉 영화 2위를 기록했다.

 레고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다고 이들이 영화 산업에 손을 뻗치는 건 아니다. 2004년 CEO가 된 요르겐 비 크누스토르프는 수렁에 빠진 회사를 건지기 위해 ‘브릭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rick)’는 전략을 마련했다. 레고의 영화 제작 역시 ‘Back to the Brick’의 연장선에 있다. 레고가 영화를 만든 궁극적인 목적은 영화 수익이 아니다. 흥행을 통한 제품 판매다.

 ‘본업’에 집중한 효과는 톡톡히 나타났다. 자녀들이 게임과 스마트폰에 빠지는 걸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레고는 훌륭한 교육용 놀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2016년 중국에 생산 공장을 짓는 레고는 10년 안에 중국에서 6억 명의 신규 소비자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주재료인 레고의 원가는 ㎏당 1달러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원재료가 올록볼록한 레고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가치는 ㎏당 75달러로 껑충 뛴다. 75배의 부가가치를 가진 기업이 수억 명의 새로운 고객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레고 부활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마텔의 대표 바비에 관한 부정적 보도도 잇따랐다. 지난해 4분기 판매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3% 하락했다는 뉴스였다. 2012년 미국 내 매출이 40% 줄어든 데 이어 하락세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데일리비스트가 바비의 55번째 생일인 지난 9일에 맞춰 내보낸 기사엔 그 위기가 잘 드러난다. 생일 선물이라기엔 제목부터 가혹한 보도였다. ‘생일 축하해, 바비! 넌 끝났어(Happy BDay Barbie! You’re over)’. 지난달 허핑턴포스트도 다르지 않다. ‘평화롭게 잠들다, 바비(R.I.P. Barbie)’.

 위기의 중심엔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고(실제 여성이 바비 같은 몸을 가질 확률은 10만 분의 1이다), 왜곡된 여성에 대한 시각을 주입시킨다는 해묵은 논란이 있다. 여기에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가 덧붙여졌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바비는 여자 아이들의 직업적 의욕을 약화시킨다. “바비를 가지고 놀수록 ‘남자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바비에 대항하는 ‘보통의 바비’도 등장했다. 미국의 아티스트 니콜라이 람은 이달 초 평균적인 19세 미국 여성을 모델로 한 인형을 선보였다. 그의 인형에 대한 호응은 크다. 제품으로 출시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진행 중이다. 지난 주말까지 9700명이 33만7135달러(약 3억6000만원)를 모금했다. 레고의 약진과 바비의 부진을 보는 마텔의 고민은 깊다. 바짝 따라붙은 2등에게 쫓기는 1등의 초조감을 감추지 못했다. 레고의 실적 발표 직후 마텔은 캐나다의 블록 장난감 브랜드 ‘메가 블록’을 4억6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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