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 … 국민· 우리·기업 외에 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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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해 말 국민은행 도쿄지점에서 시작된 불법·부당대출과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다른 은행 도쿄지점까지 확대됐다. 대출에 브로커가 개입하는 등 국내 은행 도쿄지점 운영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도쿄지점의 지점장 등이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금액을 국내로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출처를 확인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에 일부 금액이 들어온 것은 맞지만 정당하게 들어온 금액과 섞여 있다”며 “(비자금을 조성한 건지는) 검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우리·기업은행은 자체점검 결과 심사기준에 맞지 않고 지점장 전결 한도를 넘어서는 대출이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며 금감원에 신고했다.

우리은행이 610억원, 기업은행이 130억원 규모다. 당시 우리은행 지점장은 현재 우리금융 자회사 고위 임원이 됐다. 기업은행 도쿄지점을 거친 직원은 국내에 빌딩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다른 은행들도 상반기 중 도쿄지점에 대한 자체 점검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 불법·부당대출에 연루된 은행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 도쿄지점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 일본 금융당국의 관할 아래 있어, 한국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금감원은 매년 200곳 넘는 국내은행 해외지점 가운데 4~6곳 정도 검사를 나간다. 국내 본점이 1년에 한 번 해외지점을 점검하지만 국내 지점 수준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류 붐을 타고 도쿄의 대표적인 상업지역인 신주쿠 등에 소규모 점포를 여는 한국인들이 몰리면서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늘었다. 그 과정에서 대출 브로커가 끼게 된다. 담보 가치를 부풀리거나 대출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이름을 빌리는 ‘대출 쪼개기’ 같은 불법대출도 나타난다.

일본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은행 관계자는 “브로커가 처음 대출을 성사시킬 때 뿐만 아니라 만기를 연장할 때마다 수수료를 뗀다”며 “이 과정에서 은행 직원과 유착돼 커미션을 주고받는 일이 관행처럼 벌어진다”고 전했다.

 과거 도쿄지점 발령은 승진코스였지만 최근 일본 경제력이 약화되고 자녀 교육을 위해 영어권 국가를 선호해 도쿄지점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년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을 도쿄지점에 보낸 경우, 이들이 퇴직 후 뭘 할지 막막해하다 결국 브로커와 유착해 뒷돈을 챙기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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