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상환 능력 없다" KT ENS 법정관리 신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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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3000억원대 대출사기 사건에 휘말렸던 KT 자회사 KT ENS가 12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만기가 돌아온 기업어음(CP)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다.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와 CP·회사채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이 회사가 연말까지 갚아야 할 CP는 1500억원에 이르며, 개인과 법인투자자가 20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통신기업 KT가 지분 100%를 보유한 KT ENS가 법정관리 신청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달 일어난 사기대출 사건이다. 엔에스쏘울을 비롯한 협력업체들이 KT ENS에 휴대전화 단말기를 납품한 것처럼 매출채권 서류를 조작해 금융권에서 3000억원대의 대출을 받았다. KT ENS 직원도 이에 가담했다. 은행들은 관련 서류에 회사의 진짜 인감이 찍힌 점을 들어 상환 책임이 KT ENS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낼 계획이었다. 하나은행이 1624억원, 농협과 국민은행이 각각 294억원, 저축은행들이 800억원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KT ENS 측은 대출사기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 회사가 발행하거나 지급보증을 선 CP를 갖고 있는 투자자들은 불안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엔 KT ENS가 루마니아 태양광발전소 사업을 위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발행한 CP에 대한 상환 요구가 집중됐다.

 KT ENS는 상환 의무가 있는 CP 944억원 중 453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갚았지만 나머지 491억원을 갚을 수 없었다. KT ENS 강석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루마니아 태양광 사업은 그동안 17차례나 만기 연장을 했는데 대출사기 사건 이후 분위기가 나빠지면서 CP 만기 연장이 안 돼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모회사인 KT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담보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을 하면 배임에 해당할 우려가 있어 KT ENS에 자금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게 KT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은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은 문제가 된 대출금을 갚지 않기 위한 일종의 ‘꼬리 자르기’다.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KT ENS의 2012년 매출액은 5006억원, 영업이익은 72억원이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자산이 1899억원인데 태양광 사업 등 신사업을 하면서 2392억원의 지급보증을 서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회사 규모에 비해 지급보증 규모가 너무 크다. KT 자회사라는 이유로 쉽게 자금을 조달해 방만하게 사업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날 KT ENS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등급(원리금 상환 능력 우수)에서 C등급(원리금 상환 능력 없음)으로 강등했다.

김원배·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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