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코너] 학생 울리는 도서정가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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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뒤 할인이 안돼 실질적으로 책값이 크게 올랐다. 특히 중.고등학교용 참고서와 문제집은 내용은 같지만 분책을 하는 등으로 지난해보다 많게는 60%까지 올린 것도 있다.

가뜩이나 문화활동이 적은 학생들인데 책값 부담 때문에 독서 기회마저 빼앗기고 있다. 학생들 간의 '도서 빈부 격차'마저 나타날 조짐이다.

도서대여점을 이용하려고 해도 주로 만화책을 취급해 정작 필요한 책은 찾기 어렵다. 주변에 도서관이 많지 않지만 소장한 책 대다수가 오래됐다.

도서정가제 시행 소식을 미처 알지 못한 대다수 학생들은 "돈이 무서워 어디 책을 사겠느냐" "이런 제도가 언제 생겼느냐" 등 말이 많다. 책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서정가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수능을 준비하는 고3은 한달에도 여러 권의 문제집을 풀어야 한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책값이 올라 버겁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며 최대 소비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았고 배려하지도 않았다.

책을 정가에 사야 하는 것은 원칙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유통과정의 거품을 최대한 줄이고 투명하게 정가를 매겼는지 묻고 싶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서점의 주고객인 것을 감안하면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는 차원에서 참고서나 문제집은 예외로 하면 어떨까.

출판업계를 살리기 위해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하자는 취지도 좋다. 그러나 당국은 도서정가제 말고는 대안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

또 학술.문예 분야의 고급서적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실시했다지만 이를 위한 장치는 발견할 수 없다. 책값이 오르면 판매가 주는 게 당연한데, 어떻게 학술.문예 서적의 판매만 늘어날까.

학술서적과 비인기 영역의 도서 등 국익과 후대를 위해 출판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책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될 것 아닌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물건값은 시장이 정한다.

게다가 유통의 대형화.네트워크화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온.오프라인에서 대형 할인점이 늘어나 소매점들이 문을 닫았다고 해서 할인점의 할인폭을 제한하거나 정가 판매를 강제한 나라는 없다.

최근 마산의 한 고등학교 3학년 1백명을 대상으로 '도서 구매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겠다"는 학생이 여전히 80%를 웃돌았다.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반서점들이 도서정가제를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전유나.김자영.이서연.이소정.이은선(인천 부광중1.대구 정화여고2.대전 대덕고2.서울 창문여고2.마산 합포고3)

▶도서정가제란=문화상품 보호를 위해 서점들이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싸게 팔 수 없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제도다. 인터넷서점도 10% 안에서만 할인 판매가 허용된다.

책값의 과열 인하 경쟁에 따른 학술.문예 분야 등 고급서적 출간이 위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가 오는 2008년 2월 27일까지 유지되며, 적용 대상 책은 단계적으로 줄인다. 그러나 발행 1년이 넘은 책은 대상에서 제외해 자유롭게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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