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피아'의 무더기 귀환, 해도해도 너무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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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감독원의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금감원 전·현직 고위직이 줄줄이 민간 금융회사나 금융 관련 협회 감사로 내정되면서 ‘금피아(금감원+마피아)’의 낙하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금융계에 따르면 이렇게 내정된 금감원 낙하산이 올 들어 이달 말까지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현역 금감원 감사실 국장도 포함돼 있다. 금감원 현역 간부가 금융사 감사로 내려가는 것은 3년 만이다. 3년 전 저축은행 사태 때 낙하산 감사가 문제되자 금감원은 “낙하산 인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감사 추천제도 폐지하고 업무 유관자는 2년간 금융회사 취업을 금지했다. 하지만 3년 만에 그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진 셈이다.

 금감원은 “해당 금융회사에서 강하게 요청했다”며 “업무 관련성도 없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굳이 금감원 현역 국장 영입을 요청한 이면에는 후진적인 금융 감독 관행이 깔려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차피 낙하산으로 채워질 감사 자리라면 규제·감독 당국인 금감원 출신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낙하산은 금융회사와 금감원 고위직의 이해 관계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다. 금융회사들은 금감원 출신을 영입해 로비 창구나 방패막이로 활용했고 금감원 출신들은 감독 대상인 금융회사에 재취업해 수억원의 연봉과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았다. 그러니 방만 경영 감시 같은 감사 본연의 역할은 애초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처벌을 받는 등 각종 금융권 비리에 직접 손을 담근 이들도 수두룩했다. 최근 고객 정보 유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KB국민·NH농협·롯데카드 감사도 모두 금감원 출신이다.

 금감원 낙하산은 대형 사고·비리가 터질 때면 어김없이 논란이 되고 각종 근절책도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뿐이다. 금감원의 규제 권력이 워낙 막강한 데다 법과 제도 대신 ‘인치(人治)’가 여전히 횡행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출신의 안면을 봐주는 식의 금융 감독이 계속되는 한 금피아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덩달아 한국 금융의 경쟁력과 선진화도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