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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냄새짙은 전투적언어로 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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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온 사회를 붉은 사상으로 일색화」하려는 북괴의 획책은 언어부문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났다. 아니 북괴는 언어정책을 통해 평화를 사랑하는 한민족 고유의 사상을 적개심 불타는 호전적 사상으로 개조하려고 광분해 왔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따라서 북괴의 모든 신문과 방송내용, 그리고 회의에서의 연설은 화약내가 짙게 풍기는 전투적용어로 일관되어 있고, 그 형식은 「김일성교시―전투―승리」로 도식화 되어있다. 『속도전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키며 모든 전선, 모든 단위, 모든 초소에서 대혁신을…』, 『6개년 계획의 모든 고지들을 점령하고…』, 『천리마 기세로 총돌격…』―. 가슴 섬뜩하는 표현들이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대로 북한주민들의 일상용어가 되어가고있다.
지난 3년간의 남북대화는 그 변화의 깊이를 절감케했다. 어*는 물론 그것이 내포하는 뜻에있어 남북사이에 엄청난 장벽이 싸였음을 알려 주었다.
「힘을 합하여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뜻하는 『합작』은 「공산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가 손잡고 같이 사업」하는 것으로, 「일을 능란하게 잘 처리하는 사람」인 『일꾼』은 「혁명과정에서 선봉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로 달리 풀이했다. 이들과 함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쓰인 「민족」 「인민」 「조국」이란 단어도 마찬가지.
이희승편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언어란 음성 또는 문자를 통하여 사상·감정을 표현·전달하는 일종의 사회적 활동』이다.
이에 비해 김일성은 「언어」를 『사람들의 교제수단·사상교환의 수단으로서 자연과 사회를 변혁하는 사람을 교양개조하는데 힘있는 무기』,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불러 일으키는 조직동원의 무기』, 『민족적 자부심과 계급의식을 높여주는 사상교양의 무기』,『사회주의 민족문화를 남조선혁명발전단계에 맞추어 침투시키는 무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서 「민족어의 발전」이라는 방침을 「헌법」과 「당기본문헌」에 넣고, 「문화어운동」이란 구호아래 『언어에서 사대주의·복고주의·「부르좌」요소를 없앤다』는 소위「언어정화사업」을 강행해 온 것이다.
사대·제국주의를 씻는다고 지난49년 9월부터 문자사용을 폐지하고 한글을 전용케했다. 일본어도 못쓰게 했다.
그러나 대중선동의 효과를 늘리기 위해서 문자가 필요하게 되자 사회·정치적용어에 예외를 두고 과학분야에서도 후퇴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게다가 상당한 혼란이 일어나자 68년께부터 한자교육을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어도 물질명사를 한글식으로 바꾸었을 뿐이며 억지개조에 궁색한 나머지 「러시아」 또는 중국어 발음을 변조해 쓰도록했다. 그 예로 「상부볼타」(오트볼타) 「웽그리아」(헝가리) 「깜빠니아」(캠페인) 「불도젤」(불도저)등 얼마든지 손꼽을 수 있다.
54년9월 소위 「조선어철자법」을 만들어 24자모를 부정하고 된소리5자(ㄲ ㄸ ㅃ ㅆ ㅉ)와 복합자모 11자(ㅐ ㅒ ㅔ ㅖ ㅚㅔ ㅟ ㅢ ㅘ ㅝ ㅙ ㅞ)를 넣은 40자모세을 주장했다.
여기에 ㄹ·ㄴ두음을 인정, 기성세대에 개조를 강요한 한편 한국의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도전하고 나섰다. 량심(양심) 력사(역사) 료리(요리) 류수(유수)등이 그 예다.
이어 66년6월부터 「조선말 규범집」이라는 것을 조작, 「혁명적·전투적 호소성이 높아진 문화어」를 본격적으로 신조 사용했다.
즉 『서울말은 표준말이 아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아양떠는 코맹녕이 소리다』라고 비방하고, 『민족어는 평양을 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문화어」라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불벼락을 안겨 주다」 「일떠서다」 「까밝히다」 「아글타글」 「천날전투」 「1211 강철고지」 「주체형의 맑은 피」 「6개년계획 총돌격전」등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선동적인 어휘를 대표적 통상어로 내놓았다.
「민속을 위한 민족어」라는 미명아래 가장 과학적이고 유려한 한글에서 특성의 하나인 정서와 순수를 송두리째 말살시킴으로써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의 동질성을 파괴한 것이다. 「원수」를 「원쑤」라고 고쳐 「조국과 인민을 반대하며 혁명위업에 항거하는 반혁명분자」라고 정의하고 「원수」는 「원수」의 의미로 김일성 1인에 대한 경칭조사로 고정했다. 이를 비롯, 김일성을 돋보이게 하고 수식하는 아첨어구만이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그리고 「결론」이라는 용어등 몇개는 김일성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문화어」임을 억지로 분식한 결과 배달 민족끼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글로 둔갑하고 말았으니 그 예는 아무리 들어도 끝이없다. 「요해」(요해·이해) 「지어」(심지어) 「갈매흙」(감탕흙) 「거름발구」(거름을 실어나르는 달구지) 「꽁따리 쇠쪼박」(작은쇠 조각) 「군사칭호」(계급) 「굴간」(터널의길이) 「굽인돌이」(강이 굽이치는 곳) 「남조선달리기」(장애물육상경기) 「끌끌하다」(마음이 맑고 바르고 깨끗하다) 「답새기다」(세차게 때리다) 「만가동만부하」(만가동만부하·기계의 공칭 능력을 전부 발휘한 상태) 「무연하다」(무질서하다) 「무등」(무척) 「무으다」(조직 하다) 「발가지다」(폭로되다) 「비날론」(화학섬유) 「사래」(이랑) 「선행관」(앞질러 책임량을 수행하는 관점) 「성수」(성수·수행) 「뼘」(뽐) 「빈포기누비기」(보직) 「수걱수걱」(말없이 일하는 형용) 「쪽잠」(잠시 동안 자는 잠) 「에돌다」(선뜻 나서지않고 슬슬 피하다) 「이신작칙」(이신작칙·솔선수범) 「추어전」(추어전·고기잡이) 「칼바람」(매운바람) 「포치사업」(인원 자재를 미리 배치하는 작업) 「풍막」(움막) 「헤가르다」(헤쳐나가다) 「후치질」(가볍게 밭이랑 사이를 가는 밭갈이)…….
북괴는 언어정책에서 무엇보다 「사상성의 원칙」을 강조한다.
『뜨락또르는 밭같이 하는 기계라고만 풀이 할것이 아니라 농민들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하고 일을 헐하게 하도록 하기위해 노동계급이 만든 것이라고 알기쉽게 설명해 줘야한다』는 것이 단적인 실례.
북괴는 「조선어사전」 「정치용어사전」 「경제사전」등 각종 사전을 만들어 이상과 같은 「언어정책」을 강행해 왔다. 그러나 한글의 붉은 개조 획책은 이에 그치지 않고 풀어쓰기를 바탕으로 한 한글형태의 변형에도 미치고 있으니, 『통일이 되면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김일성이 말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내외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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