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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의 눈으로 본 우크라이나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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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일요일인 9일 미국 증시가 ‘불 마켓(bull market)’ 5주년을 맞았다. 우리말로 ‘대세 상승장’으로 표현되는 불 마켓은 증시가 거침없이 달아오를 때 쓰인다. 2009년 3월 9일 글로벌 금융위기의 밑바닥에서 시작한 주가는 S&P 500지수 기준으로 177%나 올랐다. 1920년대 대공황 이래 여섯 번째로 긴 황소 장세다.

 흥미로운 것은 불 마켓 다섯 번째 생일상의 국제 외교 환경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서방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대개 강대국이 맞붙는 국제적 분쟁은 주가에 악재 중 악재다. 그런데도 미국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적어도 월스트리트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증시의 상승 기운을 꺾을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의미다. 월가의 베팅엔 믿는 구석이 있다. 동서 냉전시대와 확연히 달라진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힘이다. 이 시스템에 편입된 러시아는 더 이상 과거의 독불장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불똥이 글로벌 경제로 옮겨붙으면 러시아는 득보다 실이 커진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또다시 냉전을 수행할 수 없는 이유로 러시아 경제의 이런 취약성을 꼽았다.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위기가 고조된 3일 러시아 증시는 12%나 빠졌다. 이로 인해 시가총액 6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러시아가 소치올림픽에 쏟아부은 비용보다 100억 달러가 더 많다.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러시아는 환율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1.5%포인트나 높였다. 주가가 떨어지고 금리가 오르면 러시아 국민들의 지갑이 거덜 난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은 어떤가. 이 회사 주식은 런던 증시에 상장돼 있고 뉴욕, 베를린, 파리 증시에서 거래된다. 러시아 국내총생산의 25%를 차지하는 이 회사의 그날그날 가치가 서방 주요 증시에서 결정된다. 러시아의 부를 거머쥔 올리가르히(신흥부호)들은 개인재산을 런던과 뉴욕의 부동산 등에 쟁여 두고 있다. 서방이 자산동결 조치를 취하면 당장 올리가르히들이 압박을 받는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돈줄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도 경제적 무기가 있다. 유럽이 쓰는 천연가스의 30%가 러시아산이다. 천연가스 공급중단은 유럽에 금방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함부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유럽에 가스를 끊으면 1000억 달러 가스 수출대금이 날아간다. 유럽과의 관계 단절도 감수해야 한다. 유럽이 문을 걸어 잠그면 러시아 경제는 곡소리가 난다. 천연가스 무기화는 쇄국에 준하는 각오 없이는 집어 들기 어려운 카드다. 하지만 조심스럽기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흔들리면 유럽도 피해가 커진다. 서방 진영과 러시아는 칼자루와 칼날을 맞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결론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파장은 얽히고설킨 글로벌 경제 체제의 맨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한국 경제의 대응책도 그곳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