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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모순 … 해명 자료가 되레 위조 논란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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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재준 국정원장

국정원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한 국정원의 해명이 계속 달라지면서 논리적 자기모순에 빠지는 모양새다. 심지어 해명한다고 공개한 자료에서 다른 문건의 위조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오히려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증거 조작 의혹은 지난달 14일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가 “검찰이 이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문건 3개가 모두 위조됐다”는 회신을 법원에 보낸 사실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국정원은 2월 16일 발표자료를 통해 “검찰에서 제출한 문서 3개는 모두 적법한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조작이나 위조도 없다”며 강력히 반박했다. 특히 문서의 출처에 대해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입수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얼마 뒤 일부 문서는 비공식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2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조백상 선양 총영사가 “1건(출입국기록 확인서)만 공식적으로 받았고 나머지는 모른다”는 입장을 밝힌 뒤였다. 그때까지 국정원은 문서 위조는 절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늦게 배포한 자료에서 국정원은 “(문서들은) 국정원이 어렵게 입수한 것으로 관인이 정상적으로 찍혀 있고, 서류양식도 일치하는 공식문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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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난 5일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가 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가 공개되자 완전히 입장을 바꿨다. 우리도 속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7일 발표한 해명 자료에서 “김씨가 중국 측으로부터 발급받았다며 싼허(三合) 세관의 답변서를 주길래 진본으로 믿고 검찰을 거쳐 법원에 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결국 지난 9일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발표와 한국 대검의 감정 결과에 대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일관해 논란을 키웠다. 비공식적이지만 초기 중국대사관의 회신에 대해서는 “중국을 믿을 수 없고 저의가 있는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 검찰마저 “도장이 서로 다르다”며 위조 의혹에 무게를 두는 조사 결과를 내자 “고무도장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다”는 비상식적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대공수사 관계자들은 “ 국정원이 내놓은 해명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이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낸 해명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의혹을 자초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다른 것은 몰라도 (간첩 혐의를 받는) 유우성씨 출입국기록에 대한 허룽(和龍)시 공안국의 확인서는 팩스로 영사관이 받아 검찰에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받아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자부해온 문서다. 그러나 처음 영사관에 도착한 문서를 보낸 팩스 번호는 허룽시 공안국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부랴부랴 다시 팩스를 받아 제출했다.

 하이라이트는 협조자 김씨의 자살 시도 직후인 7일 발표한 해명이다. “답변서 입수 비용은 이미 지불했고 유서에 나온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관련된 문건은 답변서와 전혀 별개”라고 주장한 것이다. 누가 봐도 또 다른 자료가 위조됐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검찰 공안 라인의 한 관계자는 “지금껏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경우는 없었다”며 “국정원이 위축되고 당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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