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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개신교는 버터, 가톨릭은 올리브 … 맛도 정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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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8세기 유럽에서 ‘차’는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작자 미상, ‘차 마시는 두 여인과 장교’ 1715년경,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그림 문학동네]

18세기의 맛
안대회·이용철·정병설 외 지음
문학동네, 317쪽
1만8800원

밥상은 처절함에서 피워낸 생명의 꽃밭이다. 아무리 조촐한 상차림이라도 말이다. 먹어야 산다지만, 과연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태초부터 알았겠나. 아득한 선조들의 목숨을 건 시식이 없었다면 독초와 독버섯을 어떻게 구별했겠나. 밥도, 김치도, 달래와 팽이버섯 얹은 된장찌개도, 미나리 풋풋한 복국도 거듭된 배앓이와 무수한 죽음을 통해 터득한 원초적 삶의 지혜일 것이다.

 음식은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호기심과 모험심, 창의력과 인내력의 산물이다. 맛이 혓바닥의 단·쓴·신·짠 감각을 뛰어 넘어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이유이다. 살 맛도 나고, 죽을 맛도 본다지 않는가.

 그런데 이 ‘맛’에도 정치가 끼어든다. 노예제도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며, 세계 질서를 재편하기도 한다. 설탕의 달콤함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사탕수수밭 노예들의 피땀으로 정제된 것이 아니던가. 한 줌의 후추를 얻기 위해 제국의 선단이 대양을 누비고, 오후에 홀짝이는 한 잔의 홍차는 아편전쟁과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 물론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감자가 유럽의 대기근을 넘기게 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이 산업혁명에 지친 노동자들의 땀을 씻어 주기도 했지만.

 옴니버스 식으로 제작된 이 책은 18세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럴 것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 신대륙을 엮고, 휴머니즘과 시민사회가 씨줄 날줄로 얽히면서 맛의 이동과 재해석이 범세계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가위 ‘백미제방(百味齊放)’의 시대다.

 책은 버터·설탕에서 크라우트와 파스타, 홍차와 커피, 맥주와 포도주에 이어 고추장에 이르기까지 그 연원과 희로애락이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가령 ‘버터’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요리의 기본재료가 됐다. 그런데 동물성 기름이란 이유로 한때 교황청이 사순절과 금요일에 금식하도록 명한다. 문제는 교황청이 있는 남유럽은 주로 올리브기름을 쓰기 때문에 북유럽의 반발에 무신경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개신교지역은 버터, 가톨릭지역은 올리브로 구분된다.

 노예무역으로 성장한 야만적인 설탕산업은 인권에 눈 뜬 영국의 주부들의 불매운동으로 급격히 위축된다. 참정권이 없었던 여성들은 자신들을 ‘달콤한 동반자, 요염한 노예’로 치부했던 남성권력에 ‘무설탕’으로 맞섰던 것이다. 최초의 여성 정치운동이랄까. 영국은 1833년 노예제도를 폐기한다.

 청(靑)의 건륭제는 남순(南巡)을 즐겼다. 항저우(杭州)에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평복한 황제는 여느 집 문을 두드려 식사를 청한다. 가난한 주인은 생선대가리 반쪽과 두부 한 덩어리를 두반장으로 간한 조림을 내놓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3년 후 또 다시 찾아가 같은 음식을 청한 황제는 은자를 내어 ‘왕윤흥주루(王潤興酒樓)’를 내도록 한다. 간판의 ‘윤(潤)’은 바로 ‘비 오는 날 문에 서 있던 왕’이란 뜻인데, 지금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그가 먹었던 ‘거지 닭’은 이름과 달리 명품요리가 됐다. 이 또한 맛의 통치술이랄까.

 조선에서 가장 장수한 영조는 적게 먹고 담백한 맛을 즐겼다. 기름진 민어보다 조기를 좋아했는데, 신하들이 왕의 비위를 맞추느라 원래 석어(石魚)로 불리던 것을 ‘기운을 돕는다’는 뜻의 ‘조기(助氣)’라 불렀다. 영조는 특히 고추장을 좋아해 20년 동안 매일 수라상에 올렸다고 『승정원일기』는 전한다. 아마도 우리가 고추장의 매운맛과 감칠맛에 중독된 게 이 무렵부터일 듯하다.

 그러나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하는 백성은 죽을 맛이다. 그래서 구황식물로 솔잎을 찧어 먹었다. 그런데 솔잎을 먹으면 하도(下道)가 막힌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해법으로 ‘날 콩을 씹으라’했지만, 어디 쉬운가.

그래도 술은 빚었다. 정월 첫 돼지 날에 술을 빚고 두 번째, 세 번째 해일(亥日)에 덧술 한 삼해주(三亥酒)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서도 ‘부여족은 연일 음식가무(飮食歌舞)를 즐기며, 고구려는 집집마다 술을 빚어 저장하고, 삼한도 술과 춤을 즐긴다’고 적고 있다.

 맛은 기후와 환경을 극복한 인류의 역정이자 끝없는 욕망의 대상이다. 책의 부제목은 ‘취향의 탄생과 혀 끝의 인문학’이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에 혀 끝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편에는 여전히 삶이 죽을 맛인 굶주리는 사람도 숱하다. 맛은 여전히 정치적인가.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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