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위대 쏜 저격수, 같은 편 야권 인사가 배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몰래 녹음된 대화가 폭로돼 유럽이 들끓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만의 처지가 아니게 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르코지 몰래 녹음한 그의 최측근=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파트릭 뷔송이 2011년 2월부터 당시 대통령이던 사르코지의 대화를 수백 시간 녹음했다는 사실이 5일(현지시간) 한 프랑스의 주간지에 의해 보도됐다.

 일부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가수 겸 모델 출신인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유부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남자’란 의미의 ‘켑트맨(kept man)’이라고 부르며 퍼스트레이디가 되면서 엄청나게 ‘돈 되는 계약’을 포기했다고 불평했다. 뷔송 자신이 사르코지 앞에선 “대통령답다”고 칭송하다가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리에선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난쟁이” “키 작은 사람”이라고 지칭하며 “결단을 못한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담겼다.

 프랑스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사르코지의 측근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으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재도전하려는 사르코지로선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다. 이번 내용이야 그렇다 쳐도 앞으로 어떤 내용이 언제 또 나올지 몰라서다. 정치권에선 “수사하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 인사는 “(대통령이 비밀 녹음을 지시한 미국의) 워터게이트의 정반대 경우”라고 개탄했다.

 ◆“야권 진영 인사가 저격수 고용했다”=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의 마이단(독립)광장을 찾았던 우르마스 파엣 에스토니아 외교장관이 캐서린 애슈턴 EU 고위 외교안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 결과를 설명한 통화 내용도 같은 날 유출됐다. 파엣 장관은 “마이단에서 사상자 치료를 담당했던 의사가 ‘저격수들이 시위대와 진압부대 양측 모두를 사살했다’고 말했다”며 “저격수들 뒤에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아니라 기존 야권 진영 인사 가운데 누가 있다는 의혹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진상 조사를 꺼리는 것도 사람들의 의혹을 키운다”고 했다. 이 내용을 유튜브에 올린 인사는 실각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의해 도청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 쪽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파엣 장관은 통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며 도청에 대해선 “유감”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감청 기록은 누구에게?=에르도안 총리와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터키의 한 매체가 이날 “통신부처에서 2012년 이전 만들어진 감청기록이 모두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누군가 가져갔다는 의미다. 앞으로 터져나올 게 부지기수일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지난달 5일부터 유튜브에 에르도안 총리의 전화 통화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하더니 지난 25일 급기야 총리 부자가 10억 달러(1조원)에 이르는 돈을 숨기는 대화까지 게시됐다. 근래에도 에르도안 총리가 친구의 회사가 군함사업을 수주하도록 도왔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에르도안 총리는 통화 녹음과 관련, 비리에 대해선 부인하고 외압 논란에 대해선 시인하는 등 선별적 대응을 하고 있다. 또 종교 지도자인 페툴라 귤렌을 추종하는 세력이 배후에 있다고 지목하며 연일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여론이 나빠지자 급기야 “이달 말 지방선거에서 1위를 못하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