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타이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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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의「주니어·미들」급 권투선수 유제두군이 세계 「챔피언·타이틀」을 획득했다. 상대는 일본인선수. TV화면에 비친 광경을 보며「링」위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등 환호가 대단했다. 일본에 사는 교포들이 모국선수에 의해 일본의무대에서 일본인선수를 때려눕힌 것에 그처럼 열광한 것 같다.
권투는 「스포츠」가운데서도 인간의 원시적인 감성이 가장 짙게 표현되는 경기다. 기나 요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상봉선수를 주먹으로 때려주는데서 관중들은 쾌감을 느낀다.
어느 선수가 정면으로 「펀치」를 맞아떨어지는 것은「복싱」에선 더할 나위 없는 장관을 이룬다. 기리한 취미 같지만, 사람에겐 그런 야릇한 본능이 자기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것이다.
권투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정말 인간의 본능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류는 삶을 지속하는 수단과 본능에 의해 지상에 나타날 때부터 싸움을 해야했다. 고대에는 주먹이 둘도 없는 무기였다.
그러나 무기가 등장하면서 주먹은 별로 할 일이 없어졌다. 결국경기를 위한 종목으로나 남게되었다.
그것이 정식 경기종목으로 등장한 것은 제23회 고대「올림픽」(BC688)때. 인기는 벌써 그 무렵부터 대단했다. 전차경기의 다음가는 인기「게임」이었다고 한다.
고대「헬레닉」시대이후에는 한 때 쇠장갑(Cestus)을 끼고하는 살인적인 경기가 된 일도 있었다.
「데어젠스」라는 세계「헤비」급「챔피언」은 BC486년부터 18년동안 무려 2천1백2회의 경기를 하며 1천8백명을 살해했다는 공포의 기록도 갖고 있다.
근대의「복싱」은 17세기말 영국의「제임즈·피그」가「푸트웍」(footwork)을 요하는「그리스」식을 개발하면서「스타일」을 잡게 되었다.
「복싱·글러브」도 그의 제자인「브루튼」2세가 고안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복싱」을 시작한 것은 단성사의 주인이던 박승필씨에 의해서였다.1925년1월30일 YMCA주최의 제9회 실내운동회는「복싱」을 경기종목으로 처음 채택했었다.
1928년6월22일엔 YMCA주최로 전기선권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당시의 노인들은 『이게 무슨 짐승같은 짓이냐』고 대노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1931년엔 미국에서 개최된 제10회 「로스앤젤례스·올림픽」대회 예선전에서 황을수선수가「라이트」급 우승을 한 일도 있었다.
이번 일본에서의「타이틀」전은「주니어·미들」급으로 동양에선 최고 체위의 경기.동양의 거한들이 일전을 한 것이다. 교포들이 많이 사는 나라에선 때때로 이런 경기가 열려 정신적인 해방감을 주는 것도 해로울 것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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