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고질…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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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월간문학지「현대문학」6월 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김영기씨의 평론『개화기 소설의 양면성』이 서강대 이재선 교수(국문학)의 논문『개화기의 우국 문학』을 상당부분 표절한 것임이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필자가 다른 두개의 논문이 우연히 같은 주제를 담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김씨 평론의 경우 그것이 작년 5월 발행된 신구문고 제10권(『개화기의 우국 문학』)에 수록된 이 교수 논문의 의도적 표절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두개의 논문은 우선 주제부터가 같다.
이 교수는 그의 논문 가운데서 개화기 소설을 신소설과 전기소설로 구분, 전자를 「현실에 대한 순응의 문학」으로, 후자를「구제의 문학」으로 각각 규정했는데 김씨의 논문은『개화기 문학은 개화라는 순응주의적인 면과 독립이라는 구제주의 적인 면의 양면성의 거울을 갖게된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처럼 이씨의 논문을 주제부터 도용한 김씨의 논문은 20여 군데에 걸쳐 이 교수의 문장을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표현만을 바꿔 표절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글을 자기 글 속에 인용할 때는 주로써 출전을 밝히는 것이 원칙인데도 김씨는 20여 군데에 달하는 이 교수의 문장 중 단 한군데만 출전을 밝혔으며 그나마도 공저자 민병수·조동일·이재선씨 등 3인의 이름을 모두 밝혀 그중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없도록 했다.
또 이씨는 그의 논문에서「빌헬름·텔」을 소설로 다룬『서사건국지』, 「잔·다르크」를 소설로 다룬『애국부인전』, 그리고 대한 매일신보의 논설 등 자료의 몇몇 귀절을 인용했는데 그 인용까지도 똑같이 인용하면서「재인용」이라는 주를 달지 않았다.
김씨의 이 같은 표절행위는 그가 우리 평단의 중견으로서 지난 73년에는 현대문학상까지 수상한 평론가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젯점을 제기한다.
물론 문제가 된 그의 논문『개화기 소설의 양면성』은 원고지 1백장이 훨씬 넘는 짧다 할 수 없는 논문으로서 그가 표절한 부분이 극히 제한된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문단의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문인이 단 한 줄이라도 남의 글을 무단 차용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인 것이다.
표절행위는 우리 문단의 해묵은 병폐 가운데 하나이다.
문단「데뷔」의 관문인 일간지 신춘문예행사나 문예지의 추천제도를 통과한 신인들의 작품이 표절작품으로 밝혀져 당선 혹은 추진이 취소되는 일은 항용 있어 왔으며 기성 문인 사이에서도 부분적인 표절의 사례는 늘 화제가 되곤 했었다.
특히 수년 전 평론가 K씨의 외국유학 중 평론가 H씨가 K씨의 논문 한편을 대부분 도용,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던 것은 유명한 얘기다.
오랫동안 문예지의 편집을 담당했던 문인 K씨에 따르면『김씨의 표절 사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보다 훨씬 심한 표절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다』고 할 정도로 표절은 일반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표절 사건을 계기로 우리 문단에서 표절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양식 있는 문인들의 한결 같은 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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