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도 막지 못한 그 음악 '3월 11일의 말러' 서울에서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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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다니엘 하딩에게 음악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주는 치유제”다. [사진 빈체로]

‘3월 11일의 말러’. 2012년 3월 일본 NHK가 동일본 대지진 1주년을 맞아 방송한 다큐멘터리 제목이다. 오는 10, 11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하는 지휘자 다니엘 하딩(39)이 이 기록필름의 주인공이다. 하딩과 3월 11일과 말러는 어떤 인연으로 묶였을까.

 다니엘 하딩은 2011년 3월 11일, 뉴 재팬 필하모닉 지휘를 위해 도쿄에 머무르고 있었다. 입장권이 매진됐으므로 객석은 만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2시 46분, 도후쿠(東北) 지역에서 초대형 지진이 발생했고 도쿄 도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1800석 규모 ‘스미다 트리포니 홀’에는 고작 105명이 모였다. 단원 몇 명은 공연장에 오지 못했고, 무대에 오른 단원들도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태어나서 처음 지진을 겪은 하딩은 당황했지만 공포를 극복하고 지휘대에 섰다.

 저녁 7시 15분, 여진이 계속되는 와중에 하딩은 지휘봉을 들었다. 지휘자와 단원과 청중은 음악의 힘을 믿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은 작곡자 자신이 “삶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음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 슬픔의 절창이다. 4악장 아다지에토는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소리로 들려준다. 이날 말러 5번은 사람들 기억 깊이 새겨지는 명연주가 되었다.

 음악회가 끝난 뒤 하딩은 로비에서 청중과 일일이 굳은 악수를 나눴다. 교통편이 끊겨서 귀가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홀은 개방되었고, 하딩과 단원들은 청중과 함께 아침을 기다렸다. 그 잊을 수 없는 밤을 기억하며 하딩은 3개월 후에 같은 지휘대에 섰다. 재해 지원과 3·11의 말러를 들을 수 없었던 청중을 위해 다시 말러 교향곡 5번을 지휘했다. 막간에는 직접 의연금 모금 상자를 들고 객석을 돌며 난민을 돕자고 호소했다.

 뉴 재팬 필하모닉이 촬영한 비디오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3월 11일의 말러’에서 하딩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 날을 경계로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그것을 영원히 이어갈 것입니다. 내 안의 말러 교향곡 5번은 곧 3월 11일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하딩은 이번 내한 공연 이틀째인 11일, 역시 말러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한다. 그에게 말러 교향곡은 인류의 비애를 치유하는 노래로 새겨진 듯하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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