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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만수무강하는 인생은 무릇 얼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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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철주
미술평론가

칠곡(七谷)은 내가 두려워하는 벗이다. ‘칠곡’은 그의 호다. 얼마 전 그가 부친을 여의고 상을 치렀다. 문상객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추모의 풍정이 참 다사로웠다. 칠곡이 생전에 고인을 얼마나 정성껏 모셨는지 객들이 알고 있었다. 그를 추키는 덕담에서 향내가 났다. 고인도 마지막까지 평안하셨다는 말끝에 술 얘기가 나와 화들짝 놀랐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도 술을 드셨단다. 달게 한 모금 넘기신 뒤 “아, 맛있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게 뭐 놀랄 일이냐고? 놀라지 마시라. 고인의 춘추가 아흔일곱이셨다. 술을 아끼는 이의 희망은 가지가지다. 누군가 우스개로 던진 말이 입때껏 기억에 남는다. ‘숨 넘어가기 전까지 술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

 문득 칠곡이 권주가를 들려주던 때가 생각난다. 지난해 중국 뤄양에 답사하고 돌아와 동행들과 뒤풀이하던 날이다. 답사 내내 그는 수고했다. 교수라서가 아니라 워낙 사학과 한학에 박통한 그는 황허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해설이 유쾌했고, 룽먼 석굴에서 당나라 문명의 목격자처럼 논변이 명쾌했다. 답사객들이 애주가라 중국 명주를 빼놓지 않고 마시는 재미도 쏠쏠했다. 칠곡이 무슨 까닭으로 그런 권주가를 불렀는지 얼추 짐작은 한다. 술잔을 든 그가 선창했다. ‘만수산 만수동에 만수천이 있더이다/ 이 물에 술을 빚어 만수주라 하더이다/ 이 잔을 잡으시면 만수무강하시리다.’

 되도록 탈 없이, 오래오래 마시자는 권유였다. 잔을 덜컥 비우게 하는 추임새로는 박력이 좀 떨어진다. 오히려 운율을 타는 가락에 젖어 잔 비우는 속도가 늦어진다. 모인 이들은 느긋이 몇 순배를 돌리며 흥겹게 읊조렸다. 이 권주가는 조선 중기의 청백리로 소문난 노진이 지었다. 노진은 홀어머니를 가까이서 봉양하려고 높은 벼슬도 여러 차례 마다한 효자다. 어머니의 환갑날에 노진은 이 노래를 불렀다. 잔을 받은 어머니 심정이 새삼 촉촉했을 테다. 그날의 답가가 지금도 전해진다.

 ‘…머리 흰 판서 아기 만수배 드리는고/ 매일이 오늘 같으면 성이 무삼 가시리…’ 어머니는 아들이 따라 올린 만수산 만수동의 만수천 만수주를 마신다. 내일도 오늘 같기만 하다면야 더 바랄 나위가 있을까. 노진의 모친은 여든여섯 해를 살았다. 칠곡의 부친은 백수를 누렸다. 잘 고른 권주가가 제값을 단단히 했다.

 건배사나 권주가도 사람 따라가는 모양이다. 호쾌하기로 치면 또 다른 내 벗 단잠(檀岑)의 권주만 한 게 없다. ‘단잠’은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멧부리’라는 뜻이 담긴 호다. 나는 그를 ‘걸어 다니는 국학 사전’이라고 부른다. 널리 읽고 깊이 새기는 그의 열정은 수시로 경이롭다. 그와 함께한 자리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도무지 끝 간 데를 모르는 화제 덕분이다. 단잠은 술자리가 느슨해지면 조조의 시로 잔 비우기를 재촉한다. 이런 식이다. 그가 ‘대주당가(對酒當歌)!’ 하고 외친다. ‘술잔 앞에서 모름지기 노래해야지.’ 대작하는 이는 ‘인생기하(人生幾何)!’ 하고 받아친다. ‘인생이 무릇 그 얼마나 된다고.’ 단잠의 제청이 끝나면 여기저기 홀짝하는 소리가 낭자해진다.

 단잠의 건배사는 호쾌한 가운데 비감한 구석이 있다. ‘견줘보면 아침 이슬 같은 것/ 지나간 날은 괴로움이 많았지’로 이어지는 조조 시의 구절도 쓸쓸하다. 묘하게도 그게 술맛을 감치게 하여 거푸 잔을 들이켠다. 하여 비장미는 인간이 만든 위태로운 술안주다. 기쁨이 한 잔이면 슬픔이 두 잔. 술은 자애(自愛)와 자해(自害)의 화학적 결합을 앞당기는 촉매다.

 내게도 건배사가 있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 이인상의 시에서 슬며시 따온 토막이다. 내가 벌떡 일어나 목청을 높인다. ‘취막수(醉莫愁) 성막수(醒莫愁)!’ 무슨 소린가 하면 ‘취해서 근심하지 말고, 깨어서 근심하지 말자’는 얘기다. 맞받는 말은 ‘취막성(醉莫醒) 음막휴(飮莫休)!’다. ‘취하거든 깨지 말고, 마시거든 쉬지 말자.’ 내 건배사는 슬며시 인기를 탔다. 만만한 취객들과 마실 때는 억지로 따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발음이 어려워서도, 외우기 힘들어서도 아니다. 다들 뒤 구절만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음 날 밥벌이 못 나간 사람이 여럿이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