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친구] "고스톱 치며 친해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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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97년 7월 초 캄보디아에서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일을 겪었다. 당시 캄보디아의 훈센 제2총리와 라나리드 제1총리 세력 사이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나흘 동안의 내전이 벌어지면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라크 간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전쟁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연민의 감정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나는 96년 9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세워진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식음료(F&B) 부문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내전이 진행되는 동안 호텔에서 일하던 2백50여명의 캄보디아인 대부분이 출근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내에 살던 외국인들이 호텔로 피란을 왔다. 결국 19명의 외국인 직원이 2백명이 넘는 손님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통행금지 조치, 총격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탱크 때문에 호텔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전화선도 끊겨 외부와 연락도 단절됐다. 마지막 비상수단으로 태국 방콕까지 갈 수 있는 50인승 헬리콥터를 구했다. 호텔 옥상에 착륙시켜 손님들을 단계적으로 탈출시킬 계획이었다.

호텔에서 50m 가량 되는 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을 만큼 상황은 나빠졌다. 그러나 결국 훈센 측이 라나리드 세력을 제압, 사태가 마무리됐다.

평온이 찾아왔지만 어려움은 지속됐다. 내전 과정에서 공항이 파괴돼 외국인들의 입국이 쉽지 않게 된 데다 치안이 불안했던 탓에 외국인들이 앞다퉈 캄보디아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호텔 객실 점유율이 70%대에서 10%대로 급감해 호텔은 적자상태를 면치 못했다.

이처럼 힘겨웠던 1년간의 캄보디아 생활에서 나와 동고동락했던 한국 친구가 당시 호텔에서 식음료 부문 부책임자로 일했던 정희대(丁熙大.37.현 코엑스인터컨티넨탈서울 식음료 책임자.(右))씨다.

우리는 전쟁 후 어려워진 캄보디아 경제 사정으로 손님이 줄어 호텔 인력 감축과 경비 절감을 위해 머리를 맞댈 때에는 서로를 상사와 부하가 아닌 인생의 동반자로 느꼈다.

당시 丁씨에게서 배운 놀이가 화투다. 호텔 발코니에서 丁씨, 그리고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고스톱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1점당 10센트씩의 돈을 걸고 게임을 즐겼다.

게임 중에 돈을 세기가 번거로워 성냥개비 1개에 10센트로 정하고 게임을 끝낸 뒤 셈을 치렀다. 처음에는 내가 게임에 서툴렀지만 곧 익숙해져 게임만 하면 丁씨 돈이 내 수중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고스톱으로 딴 돈을 갖고 프놈펜 시내로 나가 다양한 음식을 사먹었다. 당시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에서 즐겼던 음식이 불고기.만두 등이다.

최근에 난 화투를 새로 구했다. 고스톱을 쳐본 지 오래돼 규칙을 잊었지만 몇 번만 치면 금세 '실력자'가 될 것 같다.

난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丁씨는 참으로 매력적인 친구다. 일 뿐만 아니라 테니스.음악.스키.영화 등 다양한 여가생활에서도 프로이자 멋쟁이이기 때문이다.

특히 丁씨는 노래를 잘 부른다. 그가 프놈펜의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김현식의 노래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른 적이 있다. 당시 노랫말의 뜻은 몰랐지만 서정적인 느낌에 나도 우수에 젖었다.

반면 丁씨를 진정한 호텔리어로 키우기 위해 크게 호통친 적도 있다. 丁씨는 워낙 책임감이 강하고 헌신적인 직원이었다.

그러나 수개월간 밤낮없이 진행한 5성급 호텔의 개관 작업으로 인해 그도 지쳤는지 나태해진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내 진짜 의도를 알았는지 요즘엔 나를 '사부(師父)'로 부르곤 한다.

97년 말 丁씨가 한국으로 돌아가고도 우리는 e-메일.전화 등을 통해 정을 나눠왔다. 하지만 서울에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01년 그가 있는 한국 땅을 밟으면서 가슴이 따뜻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린애처럼 설레기도 했다.

난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스위스의 글리옹 호텔학교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한 이후로 지금까지 17년간 외국생활을 해왔다. 그동안 11개국의 일류급 호텔에서 일했다. 하지만 한번도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마도 丁씨 같은 친구 덕분이 아닐까.

정리=하재식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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