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생명의 다리’ 역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자살이라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우리나라의 10만 명당 자살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금메달’ 국가다. 몇 년간 정부와 학계는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2012년 마포대교의 ‘생명의 다리’ 캠페인이다. 다리 난간에 ‘밥은 먹었어?’ ‘속상해 하지 마’와 같은 따뜻한 문구가 점등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기발하면서도 의미 있는 공익광고로 세계 유수의 광고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 캠페인으론 세계가 인정한 성공작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자살률이 줄기를 바랐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발표한 자료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전국적으로 자살률은 약간 줄어드는 추세인데, 마포대교에서의 자살시도는 2012년 15건에서 지난해 96건으로 6배나 늘었다. 캠페인 시작 전 5년 동안의 총 자살시도자 수와 맞먹는 숫자였다. 전체적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이 28% 늘어나기는 했지만 전체 자살시도자의 절반이 마포대교로 향하는 기(奇)현상이 벌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자살이란 행동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예측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 마포대교 현상은 공개적인 캠페인으로 ‘자살’을 연상시키게 하는 것이 도리어 ‘자살행동’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지이론에선 이를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역설’이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란 말을 듣고 나면 전엔 존재하지 않던 코끼리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억제하려고 하면 할수록 코끼리 생각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의도적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자살이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할수록 도리어 자살이란 단어는 마치 악성 바이러스가 머릿속에 침투하듯 깊은 곳에 매우 확실하고 간단한 선택지의 하나로 잠복하게 된다. 그러다 어떤 결정의 순간에 불현듯 방아쇠가 당겨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그랬듯 ‘생명의 다리’ 캠페인은 마포대교를 자살과 연관된 가장 분명하고 상징적 장소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게 된 것은 아닐까? 본의 아니게 코끼리 한 마리가 머릿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오스트리아 빈 지하철에서 자살자가 늘어나자 1985년부터 미디어에서 보도를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그러자 수년 만에 연 50명에 달하던 지하철 자살자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자살에 대한 언급을 피해 그 개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한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다.

이렇듯이 사안에 따라서는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굳이 코끼리를 찾아낸 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코끼리가 아닌 다른 일에 몰두하고 거기에 흥미를 갖는 것이 코끼리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잠을 자려고 애를 쓰면 더 잠이 안 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의 일상엔 이런 사례가 많다. 게임중독·다이어트도 그렇다. 게임과 먹는 것을 억제하려고 노력할수록 그 프레임 안에 갇혀 다른 생각을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돌면서 실패를 반복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물 밑으론 조용히 자살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더라도 공개적으론 자살과 관련한 노출을 최대한 줄여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자살이란 ‘코끼리’가 우리 생각에서 사라지는 날이 당겨질 것이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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