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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음 생에서 남편을 피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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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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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실 건가요?

 종종 사람들이 묻습니다. 애꿎은 질문이 되기도, 정겨운 물음이 되기도 합니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1891~1943) 대종사 시절에도 그런 교도가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가 나빴던 그는 늘 남편을 미워했습니다. “다음 생에는 절대 부부의 인연을 맺지 않겠다.” 주위에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종사가 비법을 일러줬습니다. “남편과 다시 인연을 맺지 않으려면,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다 두지 말고 오직 무심(無心)으로 대하라.”

 그 교도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남편이 싫어” “남편이 미워”라고 할수록 멀어지리라 생각했을 겁니다. 저만치 멀어지고 멀어져서 다음 생에는 절대 만나지 않으리라 여겼을 겁니다. 대종사의 진단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게 맞는 말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확인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다들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발 저 사람이랑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때는 꼭 마주치게 됩니다. 생각지도 못한 버스 정류장에서 불쑥 나타나고,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둘만 서 있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참, 귀신 곡할 노릇이네. 저 사람만 안 마주치면 좋겠는데”라며 한숨을 쉽니다.

 왜 그럴까요. 인연은 일종의 선 긋기입니다. A라는 사람을 생각하면 나와 A 사이에 선을 한 번 긋는 겁니다. 두 번 생각하면 두 번 긋는 겁니다. 깊이 생각하면 선도 깊게 그어집니다. 많이 생각할수록 선도 굵어집니다. A를 좋아해도 긋는 거고, A를 미워해도 긋는 겁니다. 그렇게 쌓인 선의 두께가 인연의 두께입니다. 그래서 대종사는 남편을 미워할수록 인연의 밧줄을 당기고 당겨서 더 달라붙게 된다고 한 겁니다.

 저는 소태산 대종사의 해법이 흥미롭습니다. “미워하지 말고 좋아해라”가 아니라 “오직 무심으로 대하라”고 했거든요. 미워하는 마음을 뒤집어 보세요. 거기에는 접착제가 발라져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뒷면은 끈적끈적합니다. 대종사는 마음을 자유롭게 쓰긴 쓰되 접착제는 바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게 무심이니까요. 무심과 무관심은 다릅니다. 무관심은 마음을 아예 쓰지 않는 거죠. 무심은 마음을 쓰되 자국이 남지 않는 겁니다.

 원불교뿐만 아닙니다. 불교도, 그리스도교도 이 접착제를 녹이려고 애를 씁니다. 불교에선 그걸 ‘참회’라 부르고, 그리스도교에선 ‘회개’라고 합니다. 예수도 이 접착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마음이 뭘까요. 접착제가 없는 마음입니다. 그럼 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일까요. 이미 답이 나왔습니다. 마음에 접착제가 없을 때 하늘나라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의 접착제만 떼내려 합니다. 그건 대종사 처방전의 반쪽만 적용하는 셈입니다. 좋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접착제가 발라진 모든 마음은 자국을 남깁니다. 그럼 무심이 되질 않습니다.

차동엽 신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풀면서 “가난한 마음은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냥 누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접착제 없이 좋아하고, 접착제 없이 미워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게 누리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저께 식탁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아내가 어깨 너머로 슬쩍 읽더군요. 그날부터 저를 참 편안하게 대해줍니다. 무심하게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