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단 긴급회의 "위기에 강한 그룹 … 단합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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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위기가 왔습니다. 앞으로 침착하게 관리합시다.”

 27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 사옥 29층 회의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에 대해 실형을 확정한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직후였다. 침통한 표정의 김창근(64) SK이노베이션 회장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그룹이지 않습니까. 저력을 믿고 함께 헤쳐나가 봅시다.”

 SK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 의장으로 그는 이날 1시간여에 걸쳐 각 계열사 사장단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주재했다. SK는 2012년 12월부터 최태원 회장의 장기 부재를 염두에 두고 수펙스 추구협의회를 통해 비상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불구속 기소되는 등 기업 총수를 둘러싼 사법부 분위기가 우호적이어서 이날 선고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사장단의 충격이 컸다”고 말을 흐렸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선 커뮤니케이션위원회를 맡고 있는 김영태 SK㈜ 사장이 대책안 등을 설명하고 김 의장이 독려의 발언을 주도했을 뿐 대부분의 사장단이 침묵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장은 이날 오후 2시쯤 A4용지 한 장 분량의 공식 입장문을 내놨다. “모든 SK 최고경영자(CEO)는 그룹 회장 형제의 경영공백 장기화가 본인들이 직접 진두지휘했던 대규모 신규 사업과 글로벌 사업 분야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김 의장은 “CEO들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어려운 경제환경을 극복하고 고객과 이해관계자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SK가 되어야 한다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에 따라 단합해 위기를 극복하자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SK는 최 회장의 장기 부재에 따라 그간 추진해 왔던 투자계획을 전면 조정하기로 했다. 의사결정은 기존처럼 수펙스 추구협의회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지만 대규모 투자 의사결정은 당분간 보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에너지와 자원개발, 반도체 사업 등 SK의 신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SK는 아프리카 석유화학 시장 진출을 검토해 왔으나 사실상 투자계획을 보류하게 됐다. 최 회장이 공을 들였던 터키 사업도 길을 잃었다. 최 회장은 터키 도우쉬 그룹과 1억 달러 규모의 공동펀드를 설립했지만 인터넷 상거래 사업 정도만 진행됐을 뿐 이렇다 할 진척이 전무한 상태다 .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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