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잡혀먹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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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뱀은 들쥐를 좋아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그램을 보면 커다란 뱀이 들쥐의 지나간 흔적을 추적해 끝내는 잡아먹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쥐나 개구리에 대한 뱀, 진딧물에 대한 무당벌레 따위를 일러 ‘천적(天敵)’이라고 한다. 즉 천적은 잡아먹는 동물을 잡아먹히는 동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천적 말고도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건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게 마련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그녀는 ‘예쁜 그림책 속에 아빠가 잡혀 먹었다는 이야기를 넣은 ‘피터 래빗’을 읽으며 ‘독자가 어린이일 뿐 뭐든지 쓸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잡혀 먹었다’는 우선 앞뒤의 행위가 서로 어긋나서 말이 안 된다. 잡혔으면 먹히는 게 맞다. 따라서 ‘잡혀 먹혔다’로 적어야 논리적으로, 또 문법적으로 옳다.

 “내가 섬에 처음 와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던 때가 생각났다. 얼마나 힘이 없었던가. 얼마나 주변을 미친 듯 둘러보았던가. 얼마나 끔찍한 불안에 떨었던가. 맹수에게 잡혀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이 글에서는 앞에서 얘기했듯이 ‘잡혀먹힐지도’라고 썼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붙여 쓰기를 했다. ‘잡혀먹히다’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에 ‘잡혀 먹힐지도’라고 띄어쓰기를 해야 한다.

 약한 동물을 죽여 그 고기를 먹는 것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이 ‘잡아먹다’의 피동형은 ‘잡혀먹히다’―이게 논리적으로 맞겠지만―가 아니라 ‘잡아먹히다’이다. 그래서 앞에서 살펴본 ‘잡혀먹히다’는 ‘잡혀 먹히다’로 띄어 쓰면 괜찮지만 붙여 쓰면 곤란하다. “자연계에서 먹잇감이 되는 동물들의 첫 번째 생존 법칙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이 괴물 같은 인생에 잡아먹히고 있다”처럼 사용해야 맞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단어들로는 넘겨박히다, 따라잡히다, 쥐어박히다, 틀어막히다, 까뒤집히다, 둘러막히다, 써먹히다, 움켜잡히다, 낚아채이다 등이 있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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