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시청자에 보일 만큼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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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는 재미가 없어야 한다.』
그 까닭을 한마디로 집어 얘기한다면 『정치는 쇼가 아니다』라는 거다. 『정치가는 광대가 아니다』쯤으로 말을 바꿔보아도 좋다. 그래서 영국 하원은 이번에도 의사 진행 상황의 TV 중계 안이라는 것을 부결시켰다. 이 같은 안이 국회에 나온 것은 지난 10년래 이번이 네번째. 번번이 아슬아슬한 표 차로 퇴짜를 맞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세워진 두드러진 이유의 하나는 정치의 「흥행적」 측면이 자극되거나 돋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의정사에서 제일 긴 역사를 자랑한다는 영국 하원이라고 해도 그것은 거룩한 철인들이 모인 것으로 이름난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선량 대다수의 식견이라는 것이 『TV란 흥행 거리만을 전파하는 매체』라고 우길 정도로 편협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실제 그들이 TV 중계 제의를 사절한 까닭은 반드시 그들이 이 전광 매체의 장단점 중 「단점」만을 나무라서 만은 아닌 성도 싶어지긴 한다.
아마도 TV가 「당연히」지니는 생리와 아울러 정치인 자신들의 생리가 자칫하면 가져올 수도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나 위험성을 짐짓 모험 할거야 없지 않으냐는 쯤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이를테면 「카메라」, 그리고 그것을 통한 유권자들의 눈을 의식한 의원들이 어떠한 사실을 필요이상으로 극화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
TV로서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같은 값이면 자극성 있는 것을 화면에 잡게 마련이다. TV란 언제나 손가락 하나로 간단히 행사되는 시청자들의 「거부권」으로 살기도하고 죽기도 하는 그런 존재다. 재미가 없으면 아무도 봐주질 않는다.
그런데 정치의 실질이란 그것이 알찬 것이면 알찬 것일수록 흥행적 가치를 상실하고 또 상실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가라든가, 소득이라든가, 또는 복지 생활 환경 따위 같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들이란 사실 서부 활극 같이 말초신경을 자극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대체 정치라는 것이 본디 우선은 이런 것을 차분히 다루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옳게 되면 될수록 「재미」는 없어져야 당연치 않느냐는 것이다. 이미 극장도 있고 곡마단도 있고 한데 정치인들까지가 아류 흥행사 노릇을 해야할게 뭐냐.
그렇지 않아도 정치라는 것이 흔히는 사실보다는 형식에, 목적보다는 절차에, 이성보다는 감정에, 대화보다는 대결에 치우치기가 일쑤인 판에 이런 경향을 더 부채질할는지도 모를 일은 안 하는게 상수라는 얘기다.
역시 이 나라 의원들은 가다간 치고 받고 하면서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기력을 잃은 탓인지, 또는 국민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준다는게 배고프면 밥 먹고 병나면 약 사먹고 하는 따위의 산문적인 것 이상으로 더 절실한게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는 탓인지, 하여간 구경거리 하나 생기나 하고 기대를 하고 앉았었는데 그런 재미 보기는 다 틀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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