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시선을 내면으로 돌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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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남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에서 정신과 병원을 찾는다. 발기불능일 때와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기 위해서. 외국 책에서 읽은 사례가 있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남편이 자주 화를 내고 말과 행동이 거칠어졌다. 아내가 왜 그렇게 짜증 내며 냉소적인 말투를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하면서 고함쳤다. 공격적인 말투가 곧 분노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내는 정신과 상담을 권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수백 문항의 심리 검사를 마친 후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와도 동의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을 거라 믿으며 다른 의사를 찾아갔다. 세 군데서 똑같은 결과가 나온 후에도 정신과 치료를 받기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쪽을 택했다.

 심리 관련 책을 읽다 보면 남자들이 자기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어한다는 대목을 자주 만난다. 정신과를 방문할 때도 성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정력이 떨어진 것만이 문제라고 여긴다. 성 기관은 남자들이 감정과 욕구를 배출하고 정서를 조절하는 대체 창구다. 그것에 오류가 생겼다는 것은 이미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문제를 찾아온 오랜 습관상 남자들은 성 기관이 작동하지 않을 때조차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한다.

 “대단히 사려 깊고 용기 있는 남자만이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 문장은 10년쯤 전 미국에서 출간된 심리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우리나라 남자들도 오래도록 그러한 상태로 지내왔다. 문제를 외부로 투사하는 남자들의 내면이 그러나 고요하고 편안한가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마음속에서 혼란과 파괴적 감정을 경험하고 있고, 자주 죄의식을 느끼거나 자기를 비난한다. 그런 감정이 내면 가득 고여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놀랍게도 혹은 희망적이게도, 나는 요즈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남자들을 자주 만난다. 사석이나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서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마음의 불편을 토로한다. 뿌리를 짐작할 수 없는 박해 불안, 원인을 찾아냈지만 개선되지 않는 강박적 행동,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상사에게 투사하기 때문에 어려운 직장 생활 등등. 그들은 20대 청춘이기도 하고 완연한 중년이기도 하지만 내면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똑같이 아름다워 보인다. 고요한 힘을 지닌 사람처럼 빛나 보이기도 한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