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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벤처 우먼] 청계천 뒤져 공기청정기 아이디어 얻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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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값싼 공기청정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차린 이길순 에어비타 대표. “대한민국 하면 떠올리게 되는 대표 공기청정기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형수 기자]

창업자와 기술자 2인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 26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연 매출 110억원대 기업이 됐다. 회사를 키운 건 길이 17㎝, 무게 152g짜리 공기청정기. 1987년 반지하에 살던 이웃집 아기가 감기를 달고 사는 게 안타까워 “값싼, 그래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기청정기를 만들자”며 창업에 나선 주부는 14년 뒤 정말로 운동화 한 켤레 값(13만9000원)이면 살 수 있는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다. 공기청정기 전문업체 에어비타 이길순(50) 대표 얘기다.

 사실 창업은 쉽지 않았다. 결혼 이후 줄곧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그였다. 처음엔 회사를 차릴 생각도 못했다. 시판되는 공기청정기를 사다가 뜯어보고는 청계천 상가를 혼자 돌아다니며 제품과 관련 부품을 보고 다녔다. 얼마나 다녔는지 어느 가게에 가면 어떤 제품을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까지 알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을 청계천으로 출퇴근한 끝에 ‘전기콘센트에 바로 꽂는 소켓 모양의 소형 공기청정기’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이디어가 명확해진 뒤에야 기술인력을 영입해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3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쳐 2001년 에어비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도 그때 정식으로 설립했다.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이라며 “그냥 운명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회사가 자리를 잡을 만할 때 큰 시련도 겪었다. 2012년 1년 매출에 육박하는 100억원대 수출계약을 따내 샘플로 보낼 제품을 4만 개나 만들었다. 그런데 돌연 주문이 취소됐다.

 “인터넷에서 제품이 주문 가격보다 싼값에 돌아다니는 걸 봤다는 겁니다. 확인해보니 국내 한 중견기업이 증정용으로 사간 우리 제품을 인터넷에서 헐값에 팔고 있더군요.”

 4만 개면 연간 판매량의 10% 물량이다. 그걸 다 재고로 떠안았다가는 회사가 부도날 판이었다. 그때 ‘구원투수’가 된 건 홈쇼핑이었다. 스팀청소기를 만든 주부 출신 기업인 한경희 대표도 홈쇼핑으로 일어서지 않았던가. 그는 “홈쇼핑 덕에 재고도 처분하고 국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도 각인시켰다”며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살아남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찾게 되더라”고 했다.

 여성 벤처인 대부분이 남성 중심 비즈니스업계에서 여성이라 겪는 고충을 토로한다. 이 대표도 처음엔 그랬다. 남자들이 하듯 술을 마시고 “형님” 하며 계약서를 들이밀지 못하는 게 늘 아쉬웠다. 술을 잘 마셔보겠다고 한약도 먹어 봤지만 소용 없었다.

 “못하는 걸 잘하려고 들면 힘만 들어요.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고객사를 만날 때면 더 꼼꼼하고 섬세하게 뭐가 필요한지를 살폈다. 직원들을 대할 때도 자식을 둔 엄마라는 생각을 늘 했다. 한 명 한 명이 회사에서 미래를 설계하게 돕고 싶었다. 이 대표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과 복리후생을 제공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 인재를 유치하려면 회사가 직원을 부품이 아니라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가면 꼭 사 들고 오는 게 ‘코끼리 밥솥’이었다. 요즘엔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 ‘쿠쿠 밥솥’을 사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 이 대표의 꿈은 에어비타를 공기청정기 시장의 코끼리 밥솥, 쿠쿠 밥솥으로 만드는 것이다.

 “5월에 신제품이 나와요. 전기 콘센트가 아니라 컴퓨터 같은 데 꽂는 USB 모양의 공기청정기입니다. 이걸로 코끼리 밥솥 한번 돼 보려고요.”

글=안지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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