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6천만「달러」의 세은 차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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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환사정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이때, 방미 중에 있는 남 기획이 세계은행 차관 4억6천5백만「달러」의 도입교섭을 타결시켰다는 보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상업차관이나 단기차관도 아니고 비교적 조건이 좋은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장기차관이라는 점에서도 수미를 펴게 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우리나라 외환사정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다. 「유로」「달러」금리에 2%를 얹어서까지 외국인의 외화예금을 끌어들일 것을 구상하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차주가 되어 외국의 상업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겠다는 판이다. 그런만큼 외화도입 정책상 노자가 직접 차관교섭 행각에 나서는 일은 조금도 어색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는 물론, 그럴 만한 불가피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선 올해 우리가 상환하여야 할 외자원리금만 하더라도 무려 약 6억5천만「달러」에 달한다. 당국의 계획에 의하면 수출입이 차질 없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장기자본의 순 도입액 11억5천만「달러」와 단기자본의 순 도입액 3억8천만「달러」정도가 있어야만 연말 외화보유고가 12억「달러」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로써 활용한 외환보유고는 연간 경상외화지출액의 불과 13.9%라는 불안한 것이다. 여전히 위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러므로 외화 위기를 현재 이상 악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원리금 상환소요액을 포함한 외화도입 총 규모는 적어도 21억「달러」 이상이 되어야 한다. 세계은행으로부터의 차관 액 4억6천만「달러」도 이와 같은 견지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만한 규모의 외자도입이 한국경제가 당면한 외환 위기를 완전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외환사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사태를 더욱 비관케 하는 것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역수지만 하더라도 수입은 계획보다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수출은 수요 감퇴로 목표 미달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으므로 결국 외자도입 소요규모는 더욱 확대해야 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제금융사정은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하게만 전환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외자도입선인 미국이나 일본 또는「유럽」의 금융시장 자체가 지금 신용불안의 상태에 있고, 또 그러한 상태에서 외환 위기 국에 함부로 차관을 공여 하겠다 고는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방대한 외자도입 소요액을 모두 공공차관으로 메울 수 없다면 부족 분은 어차피 국제금융시장에서 조달해야 할 형편인데 그 전망도 결코 밝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세 은으로부터의 차관은 외상경제의 구차스러운 방사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리한 외화도입 방식이라 할 수 있으며,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불리한 상업차관이나 단기차관보다 선택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미국이나 일본의 대한 경협 교섭도 이런 뜻에서 적극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은 외자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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