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회사서 판 어음이 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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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단자회사를 통해 일반에 판 기업 어음이 처음으로 부도가 났다. 평화 유지의 무배서 어음이 바로 그것이다. 비누 「메이커」인 평화 유지는 7개 단자회사에 4억7천8백만원어치의 어음을 인수시켰고 단자회사는 이중 5천5백만 원어치를 무배서로 일반에 팔았다. 그런데 평화 유지는 비누 원료인 우지 매점에 너무 자금을 쏟아 넣어 부도가 날 지경이 되자 부산 지방 법원에 회사 정리 신청을 내어 인가를 받았다. 흑자 도산을 한 것이다.
회사 정리 신청이 인가되면 회사는 법원 관리 아래 들어가고 모든 채무 상환은 당분간 정지된다.
따라서 평화 유지의 단자회사에 대한 채무나 일반에게 판 어음도 자연히 지불할 수 없게 된다.
단자회사가 평화 유지에 빌려준 4억7천8백만원도 단자회사의 결손이 되지만 더 큰 문제는 단자회사가 일반에게 판 5천5백만원어치의 평화 유지 어음이다. 평화 유지의 어음은 단자회사에서 지불 보증을 안한 무배서 어음이므로 법률적으론 단자회사가 일반에게 대신 갚아 줄 책임이 없다.
그러나 단자회사를 통해 판 어음이 부도가 났다는 것은 앞으로의 단자회사 공신력에 관계되고 또 모처럼 육성되기 시작한 단자시장에 대한 일반의 불신감이 커질 우려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단자회사를 통해서 파는 기업 어음은 단자회사가 상환을 보증하는 배서 어음과 상환에 책임을 안지는 무배서 어음이 있는데 무배서 어음은 위험부담이 있는 대신 금리가 높다.
즉 30일까지 어음의 경우 배서 어음은 월1.224%인데 무배서 어음은 1.410%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단자회사 발행의 어음을 사거나 배서 어음을 사는데 일부 높은 금리를 노리고 무배서를 사는 경우가 있다.
이번 사고가 난 5천5백만원의 평화 유지 어음이 바로 그 「케이스」다.
평화 유지가 법원 관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5천5백만원의 어음을 산 사람들은 돈을 받을 길이 없게 되었다.
물론 법률적으로 무배서 어음을 산 사람이 모든 손해를 감당해야 하나 단자회사가 부실기업을 적격 회사로 선정, 부실 어음을 일반에게 중개한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 단자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인 우리 나라에선 일반이 기업의 재산 상태를 잘 알기가 어려워 보통 단자회사를 믿고 기업 어음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이번 평화 유지 어음의 부도는 단자시장에 대한 큰 경종이 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처를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결국 앞으로 기업 어음을 살 땐 금리가 다소 낮더라도 배서 어음이나 단자회사 발행 어음을 사서 스스로 안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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