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극|이근삼 <극작가·서강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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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예술이란 기존 예술의 개념이나 형식을 고수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파괴하고 새 것을 모색하려는 사람들과의 부단한 갈등 속에서 자라난다.
연극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양자간의 갈등 속에서 승자란 있을 수 없다.한쪽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다른 한쪽을 희생시키는,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 최소한 예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양자의 장점이 갈등을 통하여 융합되는 과정을 통해 시대에 알맞고 미래를 지향하는 예술의 개념과 형식이 새로 정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연극은 역사가 짧은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이러한 갈등이 없었다. 다만 있었다면 예술 자체가 아니라 극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개인적 혹은 집단적 싸움이 있었을 뿐이다. 선후배·족벌 또는 파벌간의 이해 관계에 얽힌 갈등만이 판을 쳐 온 것이 우리의 짧은 연극사였다. 이러한 가운데 연극계의 양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극 평가들의 역할이 중요시 돼야 하겠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또 하나의 파벌을 스스로 형성하는데 그쳤을 뿐이다.
누가 어떤 예술을 하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사람과 가까운가, 또는 어떤 파에 속해 있는가에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비단 연극계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시집가는 날』 『허생전』 『동천홍』의 오영진씨는 극계의 어떤 개인이나 파벌에도 밀착되지 않은 고고한 극작가였다. 씨는 오직 극작만을 통해 연극계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분이다. 그와 동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그의 극공연을 외면했다. 씨가 극작가로서 지반을 굳히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젊은 연극인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구적 감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소재는 항상 토착적인데서 찾는 그의 극작 태도가 젊은 층에게 호감을 주었으며, 특히 그의 날카로운 희극 정신은 관객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연극계 일부에서는 씨를 연극인으로서가 아니라 영화인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경향도 보인다. 씨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집가는 날』도 해방 전 「시나리오」로 먼저 완성되어 영화화되었다가 후에 희곡으로 개작되어 47년 초연 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희곡으로는 볼 수 없지 않느냐 하는 말도 있다.
그러나 씨는 이 작품을 손수 희곡화 했으며 59년에는 「뮤지컬」화 해 74년 공연이 되기도 했다. 좋은 작품은 어떤 분야의 예술에도 도움을 준다. 『시집가는 날』은 그러한 면에서 우리가 높이 평가해야 할 작품이다. 물씬한 토착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깔면서도 이를 서구적인 감각으로 소화하여 양반에 대한 풍자를 구사한 이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논의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이다.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을 나열하고 그 우열을 정하는 일처럼 모순에 찬 일은 없다. 예술가의 작품이란 방송국에서 정하는 10대 가수니 뭐니 하는 인기 기준의 선정과 비슷한 수법으로 다룰 수는 없는 것이다. 상을 많이 탄 작가일수록 우수하다는 속단도 금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나 「제임즈·조이스」는 「노벨」상을 받은 적이 없으며 「T·S·엘리어트」와 「유진·이오네스코」는 초기에 수준 이하의 작품을 썼다고 혹평을 받았지만 실제 그 작품들이 오늘날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예술은 경기가 아니다. 다만 죽음이나 부득이한 일로 해서 완전히 붓을 놓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치진씨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극작가다. 그의 작품의 우열을 고려치 않더라도 그가 꾸준히 극작을 해왔고 특히 해방 이후에는 『원술랑』 등 사극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씨가 과거의 작품을 정리하거나 원숙기에 접어들어 모든 사람이 그의 새 작품을 기대하고 있을 무렵 힘겨운 「드라머·센터」의 건립 사업과 누구의 잘못이건 간에 숱한 소음 속에 그 운영을 위해 극작에 쏟아야 할 정력을 딴 곳에 써 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상설 극장에 대한 집념이 오늘날 결실을 향해 꾸준히 이뤄져 가고 있지만 작가로서의 씨의 마무리가 희생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한국 연극계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이르러 많은 극작가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연극계 자체의 모순이나 생활의 압박으로 해서 유능한 작가들이 방송 작가로 전향하는 사례가 많았다. 극단을 운영하고 협회의 일을 맡고 있으면서 다산 작가로 알려져 있는 차범석씨는 『산불』 등 과거에 좋은 작품을 썼다.
이외에 오태석씨를 중심으로 하유상 이재현 노경식 윤대성 또 최근 특이한 소재를 갖고 등장한 이강백씨 등 극작가가 꾸준히 작품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젊다. 젊으면서도 제각기 특이한 형식을 지향하고 있으며 극작에 강력한 집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해서 극작계의 앞날이 그리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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